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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 bam Jan 19. 2023

AI는 인간의 경쟁자가 아닌 수단이다.

AI는 순수예술마저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 그저 수단이 될 것인가?

요즘 마이크로소프트가 대거 투자한 Chat GPT의 등장으로 AI가 우리의 삶 속 가까이로 다가왔다는 것이 체감되는 시기이다. Chat GPT는 향후 구글의 써치엔진 플랫폼 점유율을 낮추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다줄 수 있는 써치엔진을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Chat GPT의 빅데이터로 고도화된 자기 학습능력을 통해 사람들의 불편함을 한층 더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에 리써치를 하려면 raw data를 뽑아 정리하거나 사람이 이미 정리한 글을 발췌하여 정리하게 되지만, Chat GPT를 통한다면 AI가 스스로 정리한 자료를 받아보고 사람이 손수 거쳐야 하는 일련의 노동 과정이 축소된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Chat GPT가 부적절한 정보를 전달하는 등 한계점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Chat GPT가 혁신적인 이유는 AI가 스스로 판단하여 정보를 제공하고 어떤 것을 스스로 창출해 내기 때문이다. 현재 GPT가 보이는 문제점들은 기능적 혹은 기술적 결함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 들이다. 그렇다면 AI가 스스로 창출하는 능력이 점점 탁월해진다면 향후 예술가들마저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게 된다. 실제로 Chat GPT에게 'Make a poem about love for me'라고 명령하게 되면 10초도 안 되는 시간으로 일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사랑에 대한 시를 만들어낸다. 또한, AI가 가져다주는 기능적 편안함으로 사람들은 게을러질 것인가 우려한다. 결국 사람들은 AI로 인해 인간이 해야 할 많은 일들을 뺏기고 게을러지고 예술성마저 잃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논쟁을 펼치게 된다.


나의 견해는 AI를 '어떤 것의 소멸'이라는 관점으로 보지 않고 'AI로 파생되는 새로운 이로움'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로 AI로 인해서 인간이 겪어야 할 불편함이 해소된다면 사람들을 게을러질까? 자율주행자동차가 안정화된 시기가 온다는 가정을 해보자. 사람들은 스스로 운전해 주는 차 안에서 넷플릭스를 보고 잠을 자고 극한의 편안함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과학의 발전으로 생긴 시간의 축소로 인한 것이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다. 비행기, 기차,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는 마차, 말 혹은 인간의 발로 걸어 다녀 현재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원하는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빠른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시간이 축소되고 사람들은 과거보다 많아진 시간을 이용해 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AI도 같은 관점으로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 안에서 누군가는 넷플릭스를 보고 잠만 자고 게으를 수 있지만, 누군가는 스마트카 안에서 책을 읽고, 일을 하며 전보다 많아진 시간을 통해 자기 계발을 해낼 것이다. 어느 시대고 게으른 사람과 부지런한 사람은 공존한다. 시간은 상대적이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생기고 없어지고는 부지런함과 관련이 없다. 그렇기에 AI는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든다는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닌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즉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라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 *넷플릭스를 보고 잠을 잔다고 게으르다는 것은 아니다 예시일 뿐(윙크)


그렇다면 AI는 순수예술마저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 현재 AI는 시, 소설, 음악, 그림 등 다양한 것을 창조하고 그 수준은 이미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많은 고도화된 데이터가 코딩되어 예술가를 위협할 정도의 수준으로 오르면 예술가 설 자리를 잃게 되지는 않을까 사람들은 우려한다. 하지만 AI가 발전함에 따라 예술은 'AI를 활용하는 예술가' 그리고 'AI를 활용하지 않는 예술가'로 나누어질 것이다. 인간이 만드는 순수예술에는 인간 본인의 고유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기계가 창조해 내는 창조물과는 다르고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향후 AI가 만든 그림 혹은 노래가 순수예술을 초월해 그 고유성마저 카피하고 창조해 낸다면 그것은 말이 달라지게 된다. 미래에 AI가 그린 작품과 저명한 화가가 그린 작품을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을 때, 예술 평론가마저 어떤 것이 화가의 작품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온다고 가정해 보자. 그 시대에 예술가들이 AI의 사용을 피하고 순수예술을 지킬 수 있을까? 자신 주변의 화가는 AI를 이용해 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고 더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며 대중들에게 자신의 작품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미래에는 예술가들이 AI를 이용하여 창조한 작품들 또한 순수예술로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AI는 그저 수단이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차의 발명으로 사람들이 희한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마차 vs 증기기관차의 속도 대결로 어느 것이 이길지에 대한 것이었다. 현재 사람들이 본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어리석기까지 한 실험인가. 하지만 불과 7년 전인 2016년 AI인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세기의 대결이었다. 미래의 인류가 보기에는 AI와의 대결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모른다. 당시 마차 vs 증기기관차도 세기의 대결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결국에는 산업혁명 당시 사람들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산업혁명의 산물들 또한 현재에는 당연스럽게 인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AI 또한 일반인이든 예술가든 자연스럽게 수단으로 사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현재 인간이 발명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세상을 멀리하며 사는 사람들이 출연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시청자들은 그들이 세상의 것들을 멀리하며 사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그들을 소수의 괴짜로 본다. 하지만 먼 미래에는 AI를 사용하지 않고 멀리하는 사람들이 '나는 자연인이다'의 출연자와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AI의 예술 작품과 인간의 예술 작품을 구별하지 못하는 시대가 오는 것은 예술가 관점으로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슬퍼하는 예술가들 마저 결국 AI를 활용하여 예술을 창조해 내는 시기는 온다. 역사적으로 어떤 산업이든 돈의 흐름이 그 산업으로 유입되었을 때 비로소 기하학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예술 또한 AI를 통한 창조물들이 돈을 가져다줄 것이고 그 창조물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일시적이며 결국 미래의 예술가들에겐 하나의 수단으로 당연시될 것이다. 현재 음악 프로듀서들 또한 하나의 악기를 뚜렷하게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도 대거 많다. 하지만 그들이 창조해 내는 대중음악은 그 음악성을 인정받기도 한다. 과거 악기 한 가지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음악인으로 인정받기는 했을까 돌아보자. 그 음악적 깊이는 과거 바로크 시대와는 다르고 상대적인 것이다. 큐베이스, 로직 등 수많은 좋은 작곡 프로그램을 통해 더 쉽게 작곡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고, 그들이 키보드 혹은 기타를 연주하지 못하더라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 충분히 좋은 음악을 창조하게 되었다. 그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현 시대에 생긴 좋은 음악프로그램을 자신의 수단으로 사용할줄 알기 때문이다. AI는 그런 모든 수단들을 초월한 혁신적인 수단으로 봐도 될 것이다.


AI에 대한 나의 관점이 이렇지만, 나 또한 많은 음악 곡들을 작곡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프로그램도 사용하지 않고 기타로 작곡하며 그저 습작의 형태로 남겨두고 있다. 시대가 변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지만 음악적 아날로그를 지키는 '자연인'인 셈이다. AI를 사용해서 그림이든 음악이든 창조했더라도 그 작품에는 예술가의 감정과 혼을 담았기 때문에 여전히 순수예술임에 틀림없다. AI의 줄임말은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이다. Artificial은 인공, 인조의 뜻으로 인공지능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조로 봤을 때, 인간이 AI를 창조했고 그 AI가 또 다른 창조물을 만들게 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 같은 것이 아닐까. AI가 또 다른 AI를 창조하게 된다면 이제는 그것이 'Artificial'이 맞는 것일까? 'Natural'이 맞는 것일까?


어찌 되건 인간의 혼이 담긴 예술은 여전히 위대하다.

Photo by B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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