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사유
"난 요새 철학 배우면서 지내"
친구들에게 가끔 나의 근황에 대해서 알려주면 신기해하곤 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철학을 배우는지 나누고 나면 모두가 하나같이 '철학이 그렇게 생각보다 심오하고 꽉 막히지 않았구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 철학은 고지식한 사람, 속세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 어떤 지식에 통달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철학은 누구나 배울 수 있으며, 단지 나를 더 명확히 알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길을 보여주는 학문이다.
나는 철학을 최진석 교수님께서 운영하는 기본학교에서 접했다. 기본학교를 다니기 이전에는 재테크에 빠져 있었고 어떻게 하면 사업을 더 크게 키울 수 있을지에만 나의 이목이 쏠려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모든 것들에는 나사가 빠져있는 것처럼 불안했고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철학을 접하면서 어떤 것이 문제점인지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이 어쩌면 영화 <모던타임스> assembly line 위 기계적으로 조립하는 기계공과 같이 "무엇을 위해서?"를 찾지 못했던 것이었다.
사실 철학자가 아니어도 어떤 분야에서 최고로 뽑히며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성공의 규모나 자본의 규모는 전혀 관계없다. 작은 것일지라도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해 나의 철학관이 세워진다면 그것은 올바른 길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왜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하는지?' 답변하지 못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커진다. 일반 회사에서도 이리저리 휘둘리고 주관이 없는 팀장보다는, 설령 실패할지 몰라도 자신만의 명확한 철학을 통해 빠른 결정과 행동을 하는 팀장이 더 믿음직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수동적 교육형태는 자연스럽게 철학과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주체적 사유'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수능을 위해 혹독하고 가혹하게 그리고 기계처럼 달려갔다. 하지만 수능이 끝나고 나면 금세 나침반이 없어진 것처럼 길을 잃는다. 무엇 때문에 수능을 공부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했는지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왜 공부하는지 어떤 꿈을 좇는지는 주체적 사유에서부터 파생된다. 하지만 방대한 양의 입시공부는 오히려 우리의 사유능력을 저해시킨다. 좋은 대학교를 입학했다고 가정하고 그 후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해서 공무원 혹은 대기업에 취직하면 또 바로 나침반 고장이 반복된다.
주체적 사유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생각'과 다른 개념이다. 어떤 사람들은 '난 평소에 생각이 많아'라고 말하곤 한다. 그 생각은 '사유'가 아닌 '잡념'일 확률이 크다. 보통 그런 잡념들은 하고 나면 그 다음날 바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은 수동적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저 힘을 들이지 않고 하는 우려나 망상일 확률이 크다. 하지만 진정한 사유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며 그 사유는 행동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내가 하는 행동에 소명 혹은 의미가 부여되며, 그것은 또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선순환을 이루게 된다.
결국 철학은 사유에서 비롯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철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누가 진정한 사유를 하는가 혹은 하지 않는가로 나뉠 뿐이다. 끊임없는 사유는 고독한 사투가 될 것이다. 나 또한 사유를 멈추지 않으려 힘겹게 노력하고 있다. 브런치에 글 쓰는 것조차 내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사유의 행위이다. 철학은 이처럼 꽉 막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 꽉 막힌 무언가를 풀어내주며 다음 단계로 안내하는 길잡이인 셈이다.
철학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나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게 되면 그 정답은 내가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철학은 이분법적인 사고 속 옳고 그름의 잣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의식에 가깝다. 누군가 철학적 시선에 빗대어 다른 이를 비난하고 정죄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철학이다. 자신만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그 시대상에서 본인의 역할을 찾아내는 것이 진정한 철학이 가진 힘이다.
Photo by B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