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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고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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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Jan 06. 2020

인간 그리고 '현재'에 대한 고찰

고찰을 위한 간략한 생각들

 루소는 그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주지한 '자연 상태'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순수함에 대한 복권을 요청한다. 이 개념은 실제로 있었던 세상이 아닌 가정된 세상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믿음이다. 이 믿음을 통해 루소가 원하던 유토피아적 환상을 이해하는 것과 '믿음의 효과'의 실재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에 의해 우리는 어떤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믿음을 통해 또 다른 삶의 구심점을 확립한다. 마찬가지로, 이 추론은 더 나은 세계를 위한 발판으로서 철학적 의미로서의 진보를 가능케하는 조건이다. 다시 말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은 더 나은 무언가로 항상 거듭해 나갔는데 그 과정의 중핵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이러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라는 것은 '효과'라는 것을 갖는다.


 루소가 순수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강조점을 찍어둔 곳은 '평등'이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을 끝없이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리 강조한다 한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 지금 세계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로 판결이 난다. 이런 일종의 비관 속에서 루소의 독창성이란 2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그의 추론적 믿음이 어떤 방식으로, 즉 상상력이 어떻게 세계에 작용할 수 있는 지를 자명하게 이해하게끔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그가 허탈한 투로 이 세계는 결코 순수함을 되찾을 수 없다는 말에서 좌절이 어떻게 비관이 되며 냉소로 변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입장들은 의심에 따른 반목과 존경에 따른 긍정이 뒤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을 첫 번째 요약인, 즉 긍정하는 입장에서 루소를 바라보아야 한다면 그 당위성을 충족할 근거는 현재의 영원성에 대해 이해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가 설정한 개념은 가상의 상황에 불과하더라도 -그의 덕택인지는 몰라도- 영화에서나 또는 먼 과거를 재현하는 허구적 서사에서 종종 연출된다. 즉 '원시'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돕은 유용한 사유로 자리 잡았다. 그 연출들은 인간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의지하고 협력하는 쪽으로 구조적인 양태를 환원해내고 있다. 물론 수 천년 전, 그러니까 기록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의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추론할 수 있을 뿐이지 결코 확실하다고 말할 수 없는 시간대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의 영원성은 추호의 의심이 따를 수 없다. 왜냐하면 정신분석적으로 오늘 반복되는 어제나, 마르크스의 말 같이 '역사는 반복된다'는 익숙한 표현이나, 니체의 '영원 회귀' 같은 개념들은 그 속에는 '반복'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현재란 수 천년 전에도 꾸준히 그리고 은밀하게 이행되어온 원리들의 총체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는 사태들에 대한 면밀한 이해는 이미 수 천년을 거슬러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진화론을 따라 수 만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모를까, 아주 미세하게만 일어나는 진화는 천년이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놓는다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선하다고 규정한 어떤 대상들 반대로 악하다고 규정한 어떤 대상들은 수만 년 전에는 없다 하더라도 어제는 있었고 천년 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의 우울은 천년 전에 어떤 사람이 겪을 만한 우울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목한 가장 적절한 작업물은 '감수성의 차원'들이다. 니체가 삶은 '힘에의 의지'이며 그것이 곧 '정념'이라고 말했듯이 감수성의 차원에서 이해될만한 모든 형이상학적 항은 거시적으로 그리고 미시적으로 '두 세계'의 거대하고도 미묘한 충돌, 그리고 갈등과 화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지표들이다. 그리고 의지가 인식 이후라는 것을, 즉 무언가를 정확하게 집어낼 만한 인식 능력이 있어야만이 변화의 지반을 꾀할 수 있다는 말에 따라 현재의 문제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집어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지금껏 인류가 학문의 진보에 따라 여러 관점들이 파생되었고, 그 관점들에 따라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또 사회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지지부진한 삶과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이념들을 비판하면서도 아무런 진전이 없는 정체된 시기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씻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적은 것이긴 하다만, 어떤 이데올로기적 질서들을 비판하는 작업들은 어떤 진보도 이룩해낼 수 없다. 그렇다고 인간이 이 환상들을 그만둘 수는 없다. 이것이 사라지면 인간은 삶의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니체에게 있어 인간의 나약함의 증거이고 이런 환상에 의존하려는 성향이 독존을 방해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모두 부정하고 나면 결국 그 다음엔 독존하는 개체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그래서 독존하며 언젠간 종말을 맞이하는 개체란 무엇인가? 니체의 말마따나 인간은 여전히 미심쩍기만 한 그런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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