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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Jun 07. 2019

창의적이지 못해서 쓴 글

어떤 생각이든 누군가가 하지 않은 생각은 없다.

 '창의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란 현시점에서 과거로 시선을 돌렸을 때, 과거에 살아왔었던 어느 누구도 하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창의성이란 쉽게 얻어질 수 없는 덕목이다. 어쩌면 선천적으로 주어진 행운이자 불행일지도 모를 그런 덕목이다. 자신이 아무리 창의적이라고 한들 그 사람은 이미 과거에 누군가가 걸었던 발자국 위에 자신의 발을 맞추고 있는 사람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창의적인 사고를 창발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어느 누구보다도 어떤 의미에서든지 독보적인 지위에 올라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독보적인 사람들, 인류사에서 여전히 우리가 이름을 불러주는 천재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일상에서 독창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도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런 식으로 창의성에 대한 의미를 협소하게 적용시킨다면 꽤 많은 사람들이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 개인이 가진 상상력이 과거에 이미 살았던 위대한 사람의 흔적을 더듬거리는 것만 해도 꽤 괜찮은 역량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재현하거나 실현시키는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생각이라 해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언어를 바꾸어서 나의 생각인 마냥 읊었다고 해도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찬동을 얻어낼 수 있다면 집단무의식 속으로 흡수될 것이다. 지금 세상은 결합 가능한 모든 것들이 최고에 도달한 상태이다. 충분히 결합 가능하다면 발견된 의미는 보편적 의미에서 연역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발견할 수 있는 그 어떤 영광스러운 순간을 상기한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현재는 과거에 살았던 위대한 누군가들이 많들어 놓은 유산이다. 명맥이 내려오고 있는 위대한 이름들이 남긴 모든 사고의 정수들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어떤 예외적인 사람도 발견할 수 없다. 자본주의 이념 또한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스미스로부터 시작되었으니, 만약 현체제에 대해 반목하는 식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조차 반대급부를 성립시키는 누군가의 생각을 담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는 또한 우리가 고작 100년의 인생을 살지라도, 계속해서 누군가의 생각들을 수용하고 긍정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하다. 무엇을 믿을 것이란 말인가? 무엇을 알아내는 일과 알고 있다는 건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둘 다 믿음을 필요로 한다. 그 믿음이 학문적인 권위에 걸려 있음으로 생각보다 꽤 많은 의심들을 벗어던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건 이후에는 나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사다리를 던져버린다. 또한 외재성의 낯섦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질문들과 반감들이-그것들이 아무리 해괴하다고 할지라도-확실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이미 답변이 내려져 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꽤 많은 궁금증들을 다른 사람들의 수고로움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라는 것도, 사유의 지평을 확장시켜준다는 것도, 거창한 목적을 갖고서 왕국을 건설하는 일도 모두 인간의 입장이었고 존재자의 존재의 입지를 다지는 일이었다. 우리는 역사적인 유래로부터 거슬러 옴으로써 지금 당장에 생각하고 있는 어떤 생각을 결정짓는다. 생각은 영원히 순환한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생각 또한 고여 있으면 썩는다. 그래서 존재는 새로움을 항상 요구한다. 어느 정도의 의무이자 권리로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유가 사유를 규정하고, 그 규정된 사유가 또 다른 사유를 규정하면서, 인간의 사유는 무한한 지성에 도달한다. 또 의식의 응시가 머무르는 지평선인, 앎과 무지의 경계선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변한다는 것은 소박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이 곧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애석하다. 이 세계의 외부에 위치해 있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어떤 '가치'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세계의 외부에 존재한다.

어리석은 생각이든, 똑똑한 생각이든 옛사람들이 벌써 생각지 않은 게 없다는 사실을 말이야.
- Johann Wolfgang von Goethe <파우스트> -


 방금 적힌 나의 생각들 중에서 순전한 나의 생각인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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