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살이 3개월 차,
오전에는 눈을 떴는데 몸살 기운처럼 온 몸이 아파 교회 가길 포기했다. 단체 톡방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오늘은 성찬식이 있는 날이었다. 아쉬웠다. 좀 더 의지를 내볼걸,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 침대를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기름집에 전화해 기름을 넣었다. 사실은 어제 기름이 다 떨어졌다는 신호가 왔는데, 외출이 급하기도 했고 귀찮아서 미뤘다. 그런데 기름보일러는 다 떨어지기 전 채워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종이팩에 든 음료가 다 떨어지면 공기만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기름도 다 떨어지면 공기가 차서 다시 채워주어도 조절기를 껐다 켰다 하며 공기 빼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기름집 사장님이 다녀가시고 핫케이크를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집에 살 때는 가스비나 전기세로 이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스러웠다. 고지서나 문자가 오면 확인 후 보냈고, 크게 신경 쓸 만큼의 금액도 아니었다. 이 주택은 외풍도 심하고 또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겨울에는 아래 동네보다 2-3도가 더 떨어졌다. 뜨끈하게 살았으면 그나마 나을텐데 집에서도 옷을 껴입고 양말을 신고 생활했는데. 기름을 채울 때마다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러나 이내 이 집에서 살며 누리는 것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억울함이 밀려났다.
설 연휴에도 집주인 이모와, 엄마 앞 집 이모가 딸을 주라고 식혜며 한라봉을 전해주셨다. 친구들이 놀러와 밥이 부족할 때는 5초 거리 채 되지 않는 부모님 집에 가 밥솥을 째로 가져오기도 했고, 걷고 싶을 때 집을 나가면 산도 코앞이다. 그런가 하면 엄마아빠는 내가 와 있어 봉자를 돌볼 사람이 생겼으니 여행도 마음 편히 다녀오셨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주에 몇 회는 아침을 우리집에서 함께 드시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침을 자주 함께 먹지는 않지만 손님이 오시면 우리집으로 모셔 대접하거나 후식을 먹으러 오시기도 한다.
오늘은 이 집에서 산 지 딱 3개월째다. 내일은 대학 때 친구들이 놀러오고, 화요일은 대학 선배 집으로 놀러간다. 그 뒤 다시 출근하기 하루 전까지도 사람을 만난다. 재출근 전 날은 온전히 혼자 시간을 보낼까 싶다.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로 피로감이 크기도 했고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가 든다 생각했는데 이제 마음이 이전처럼 분주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에너지를 확실히 많이 얻기도 한다. 삶이 너무 바빠 보이는 사람에게는 내 이야기 하기가 미안해 얘기하지 않은 적이 있다. 시간을 촘촘하게 쓰더라도 ‘쟤는 언제라도 내 얘기 들을 마음의 공간은 있다‘ 생각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다.
엄마가 준 핫케이크 가루는 하나도 달지 않았다. 사과잼과 커피를 곁들여 먹고, 봉자를 데리고 산에 다녀왔다. 부산에 오고 가족들과 봉자를 돌보는 일에 대해 자주 나눴다. ‘외동놀이방’(엄마, 아빠, 나만 있는 톡방)에 오늘 1차 산책을 마쳤고, 응가를 얼마나 했고, 어쩌고 보고를 했다. 그러다가 또 어제 밤 독서모임에서 나눴던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기독교, 2030에게 답하다>를 매주 두 챕터씩 읽고 토요일 밤에 가볍게 나눈다.) 내가 봉자를 돌보고 생각하는만큼 주변의 사람도 아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있나?
알아서 일인분을 해 낼거라 생각하고 내 기준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듯 보이면, 또 더군다나 피해를 준다 생각되면 타인으로 하여금 신경쓰게 한다 어쩔 땐 티를 내고 말고, 일인분이 대체 뭔데
결론을 내지 않고 또 어떻게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지 않은 채 봉자 털을 빗겨주고, 물을 먹이고 집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