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어른의 배려

by 현재

이전 교회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목사님 댁으로 갔다. 그날 목사님은 아들들과 여행을 가셨고, 나는 사모님과 큰 딸과 시간을 보냈다. 큰 딸은 중학교 2학년이다. 난 그 아이를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봤던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아이는 스스로 일어나 교복을 챙겨 입고 학교에 갔다. 학교 가는 길 마중 나가 만 원짜리 몇 장을 주머니에 넣어주며, “현금이 이것뿐이네. 과자 사 먹어 우리 곧 또 만나자"하고 인사했다.


그리고 난 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카카오톡을 확인하는데 한 아이의 생일이 눈에 띄었다. 나도 어렸던 시절에 부모님이 목회하시는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했던 전도사님의 큰 딸이었다, 두 살, 아니 세 살쯤 만났던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 아이는 부모님과 우리 교회를 떠났다. 그 아이가 스무 살 정도 되었을 무렵 내게 연락이 왔다. ‘언니’하고 나를 부르는 호칭에 나는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아이가 예전에도 나를 언니라고 불렀던가?’ 유난히 해맑고 예뻤던 아이가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내게 어릴 때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동생들을 데리고 놀아주었냐고, 본인이 커 보니 자기 동생들을 보며 언니 생각이 났다며 온 연락이었다. 사실은 나도 그 어린이들 덕에 교회에서의 시간을 잘 버틴 것이었는데, 그저 반갑고 고마워 행복해하며 답장을 보냈다.


나는 크면서 그 아이의 부모님이 자주 떠올랐다. 목회를 하던 부모님 교회에서는 오고 가는 어른들이 많았고 교회 안에 사택이 있을 때는 함께 생활하던 분들도 종종 계셨다. 토요일이 되면 오는 청년들이 있었고, 아버지와, 남편과의 갈등으로 교회에서 지내며 밥 때는 식탁 교제를 하던 선생님들이 있었다. 내가 교복을 챙겨 입고 학교를 갈 때, 아침을 함께 나눴던 선생님도 떠올랐다. 어른들은 이사를 가서 떠나기도 했고, 결혼을 하며 또는 너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홀연히 사라지시기도 했다. 난 그래서 너무 많은 것들을 드러내는 사람은 부끄럽거나, 또는 자신을 아는 상대가 부담스러워 떠나기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가끔은 어린 마음에 ‘내가, 또는 우리 가족이 그들에게 뭔가 잘못한 건가? 그래서 떠난 건가?’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어느 날 내게 다가와, “우리가 이제 다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라고, 원래 조금 더 일찍 떠나려 했지만 그때는 너희가 너무 어려서 조금 더 있게 되었다고 이제 너희도 이 이야기를 이해할 만큼 컸으니 얘기한다며, 아주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고 가셨다. 그 다정한 어른을 나는 자라는 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다니던 교회를 떠나며 목사님의 자녀들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앞으로 한 공간에서 예배드리지 못하게 되었는지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떠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는 아직 거리감에 대해 배우지 못해서 이모가 왜 가는 건지 계속 물었다고 한다. 교회에서 모두 헤어지기까지 눈물을 잘 참던 나는 2학년 친구의 편지를 보고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는 내게 "이모 이사 가는데 안 힘들겠어? 시간 되면 또 만나. 그동안 우리 교회 성도여서 고마워. 사랑해. 매일매일 이모 생각할게"란 내용의 편지를 써 줬다. 나를 걱정해 주는 아이의 다정한 마음에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생일을 맞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아이에게는 축하 메시지와 함께 기프티콘을 보냈다. 마침 아이의 프로필 사진은 내가 아는 어린 때의 그 모습이었다. 내 드라이브에 있던 아이의 어린 시절과 또 당시 함께 어울리던 다른 아이들의 사진을 함께 보내주며, 추억을 나눴다. 아이에게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가까이 이사하게 되었으니 날이 따뜻해지면 얼굴을 보자고 했다.


아이들에게 여전히 마음이 많이 머무는 것을 보면 나는 내 어린 때를 여전히 붙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기억하는 좋은 어른들의 성품이나 행동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고, 또 정말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어른들의 모습에서는 최대한 멀어지려 애쓰게 된다. 이제는 20대 친구들을 만나도 나는 편하게 있고 싶지만 내 말이 이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으로 가 닿을 때 조심스러워진다.


어린 날의 나를 신경써 준 그 전도사님 사모님의 다정함이 오늘날 내가 목사님 댁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받은 배려를 기억하고 나도 설명해주는 어른으로 살고싶다. 내 기억 속에 다정한 어른의 배려가 내 안에서 끝나지 않고 또 어딘가로 흘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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