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이란 말은 불명확하다. 그 덕에 애매한 일은 행정으로 퉁친다. 시도 때도 없는 전화와 모니터를 향한 거북목은 외부인이 사무실에 들어서야 펴진다. 사업 계획과 지출, 업무 스케줄을 짜며 수시로 접수된 공문을 보고한다. 어쩌다 회의라도 취소되는 날은 그야말로 횡재다. 업무 폴더는 버리지 못한 옷으로 들어찬 옷장처럼 파일이 수두룩하다. 무면허 노무사로서 고충 처리하다 공사 현장을 감독하는 멀티태스킹과 매일 결정을 내리는 습관은 직업병이 되었다. 총무과, 재무과이면서 노사협력과 이고 대외부서와 민원실이자 시설과 안전부서를 겸한 이곳은 사기업의 부서를 한데 모아 행정실이라 부르고 홍반장이라 명한다.
“정말이지 하루에 한 번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
아침부터 시작된 푸념에 사무실이 썰렁하다. 일정이 꼬이거나 변수가 생기면 으레 그렇다. 할수록 쌓이는 게 일이라지만 투덜대는 사람은 아직 투덜거릴 만큼의 여유가 있다. 20년을 한 조직에 몸담아보니 특별히 업무량과 난이도가 비정상인 경우를 빼면 습관적인 불평러에겐 특징이 있다.
나는 피해자다.
자신의 실수엔 관대하면서 상대에겐 이기주의자나 업무 태만을 씌운다. 자기의 영역에만 빠져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전문가 바보'라 하는데, 우물 속 하늘을 전부라 믿고 그 외의 세상을 불신하는 이치와 같다. 모름을 모르고 아는 만큼 이해하다 보니 세상은 자신에게만 가혹하다. 한두 시간이면 끝날 일이 반나절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이유나 일의 원리를 모른 채 ‘열심’을 능력 삼아 무능을 메꾼다. 그나마 ‘열심’이라도 있다면 밥값은 하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무임승차가 특기예요.
변화를 원하지만, 과정은 귀찮다.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피곤하고 나 하나쯤 안 해도 상관없다는 핑계가 익숙하다. 조직이 부조리하다는 불평러는 공갈 젖꼭지로 우는 아이의 울음을 막듯 당장 불편을 해결해달라 한다. 조직이 변해야지 자신은 아니라며 특혜는 누리되 자기 계발은 싫은 이가 무임승차자다.
사람들은 그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법이지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에코체임버” 사람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끼리 모인다.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누가 더 힘든지 내기하듯 열변을 토하는 모임과 좋았던 경험과 이슈를 나누고 시너지를 내는 만남 중 어디에 속했는지 따져볼 일이다. 감정은 바이러스라 쉽게 전염된다. 남의 불행으로 위안 삼고 자신이 더 불행하다고 부풀리는 불평러는 부정이라는 감정의 찌꺼기를 쏟아 스트레스를 푼다.
홍반장, 조직의 열사.
불평러의 비난은 비판을 가장한 짝퉁이다. 올바른 비판러는 자신의 분노가 정당한지를 고민하되, 자신만 힘들다는 식의 비루한 표현은 하지 않는다. 불법과 비상식, 소수의 이익을 위한 부정을 감시하며 속도는 더뎌도 조직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개인이 결집한 조직을 진화시키는 건 바로 개개인이다. 오늘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는 홍반장은 이 시대 조직을 개혁하는 열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