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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Dec 19. 2021

생각하는 일개미가 개미집을 바꾼다

개미집을 바꾸자

나는 육아와 사회 경력이 22년 넘은 반백 살의 일개미다. 일개미는 무리의 다수를 차지하지만 특별하지 않다.




크건 작건 조직은 하나의 무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자본, 유형무형의 권력과 조직 간의 경쟁까지 더하면 소리 없는 전쟁터다.      


조직의 하부에서 일개미가 오를 수 있는 수준의 계급이 되었지만 명함 없는 직위일 뿐 담당자이자 관리자인 동시에 비상 상황에선 총알받이다. 연말, 연초면 논리와 강요, 떼를 쓰는 다수와의 업무 분장 싸움에 홀로 출전하는데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협조라는 이름의 선전포고성 문건이 날라 오더니, 상층부에선 조직의 재구조화란 기름을 끼얹는다. 변혁이 대의를 위해 거쳐야 할 필연이라면서 십 년, 이십 년 전에도 같은 명분이었다. 그렇다면 이 명분은 합리적인가 오염된 것인가. 근본적인 문제인 이원화된 하부 조직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방법 있는지 상층부의 답을 듣고 싶다.


    

조직에도 마블이 필요해

마블에선 빌런과 히어로, 두 주인공의 활약이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히어로는 드문데 빌런은 차고 넘친다. 최근 개봉한 스파이더맨에선 역대 빌런이 총출동했다. 스파이더맨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악당과의 계속되는 대립에 급기야 또 다른 히어로가 등장한다.


조직의 빌런은 누구일까. 승진할수록 권력의 맛에 빠지거나 현장에서 동동거리던 과거를 잊은 채 조직의 발전과 공의라는 허울로 타협했다면 빌런이다. 하지만 빌런은 가까운 곳에도 산재한다. 조직이 어찌 되건 당장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방관자나 책상에서 끝없이 불평불만하는 회의론자, 당근 몇 개만 주면 채찍질에 둔감해지는 자포자기가 빌런이다. 오늘의 이슈에 일시적으로 폭발하지만 행동하기는 귀찮아 조용히 이득을 취하려는 자와 그걸 이용하는 힘 있는 자, 모두 공동 빌런이다.

      

그런데 히어로가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 이들 히어로가 아니냐고 한다면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모름지기 히어로란 영웅이다. 일순간에 악당을 소탕하고 평화를 만드는 게 역할이다. 이런 영웅의 부재 때문에 마블이 성황이고 갑갑한 현실을 반영한 좀비 영화가 끊이지 않는다.


한 번 일개미는 영원히 일개미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진지하게 이직과 퇴사를 꿈꾼다. 어디 이번뿐일까. 생계라는 굴레에서 자유하지 못해 번번이 먹먹한 가슴으로 잠이 들곤 한다. 영민하지 못한 사고 때문인지, 뜨겁다 식기를 반복하는 마음의 중탕때문인지 생각하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오랜 질문이 성큼 다가온다.     



다시 철학이다.

뛰어난 머리와 배경, 자산과 인맥을 동원할 수 없다면 사는 생애에 남은 건 철학이다. 죽지 못해 사는 삶 대신 사는 동안 나다움을 잃지 않도록 자존감을 지킬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공평하다. 빠른 성장에 목매다 제 맘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지 말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유는 사상을 만들고 철학은 온전한 사람됨을 완성한다. 일개미는 여왕개미가 될 수 없지만 생각하는 일개미는 개미집을 바꿀 수 있다.


희망이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아서 불행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면 무엇을 선택할지는 개인의 몫이다. 어차피 안된다라는 불행자로 살 것이냐, 개미집을 바꿀 일개미로 살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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