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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딴따라 Apr 18. 2022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심리적 거리를 넘는 사람에게 금 밟으셨어요라고 알려줄 방법을 위해 저자는 글을 썼다고 했다.


p. 61.  나는 외로움, 애정 결핍, 낮은 자존감을 소비라는 가장 쉬운 방법을 통해 채우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거라도 갖추지 않으면 정말로 나는 작아지고 작아져 서울이라는 이 도시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도 가끔 우울한 날이면 뭐라도 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일상은 굴욕적이지만 쇼핑의 세계에서는 소비자로서 배려와 존중을 넘치게 받을 수 있으니까.

               - 우울할 때 편지를 쓰기보다 훌쩍 나가 쇼핑하는 걸 헤프다거나 과소비라고 할 수 있을까. 여든을 바라보는 엄마도 날씨가 너무 좋거나 나쁠 때 혹은 평생 맞지 않는 인생 살았다며 아빠와 다툰 후엔 시장에 나가 뭐라도 사고야 만다. 여자에게 쇼핑은 상처 입은 내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무엇을 사버렸다는 일탈 행위가 통쾌함을 준다.



p.67.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던지는 질문보다 남들에게 받는 질문이 더 많아진다.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 관계지향적 사회에서 혼자이지만 홀로 이긴 싫은 우리는 남에게 관심이 많다. 말부터 다르다. 나와 너보다 '우리'가 자연스러운 우리는 바로 그 말 때문에, 상대에게 자꾸 묻는다. 가족, 친구, 지인부터 비즈니스, 가볍게 스친 인연까지 질문은 자연스럽다. 질문 덕에 끈끈한 관계가 되는 거라며 혼자인 사람에겐 그런 관심도 귀중하다고 한다. 사회적 인간으로 살기 위한 적정한 선의 질문과 배려였을까? 우리는 언제든 적당히 자신을 까발려야 하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p. 81.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만 해도 너무나 많다. SNS의 생활화로 언제나 소통하고 있다는 환상이 현대인을 더욱 좌절하게 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친구의 근황을 보며 질투하고, 수시로 울리는 카카오톡 알람과 채팅방에 매달리는 일상은 너무 얕고 자극적이어서 마음에 병을 불러들이기 쉽다. 내 인생은 지루하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 데 다른 사람의 인생은 편집되고 보정된 예고편이다. 그래서 멋져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서 나 혼자만 힘든 것같이 느껴진다.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에 가득 차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불행한 사람들은 갑질을 하고서도 갑질인지 모른다.          - 수시로 업데이트된 사진은 항상 행복하다. 불행하고 아프고 부끄러운 순간은 기록되지 않는다. 좋았던 찰나를 공개하는 건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과 인정받으려는 욕구 때문이다. 행복이나 불행이 영원하지 않으니까 기왕이면 좋았던 시간에 더 머물고 싶은 바램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찰나의 순간에 현혹되지 말자. 나의 아픈 순간도 끝이 있으니...                        


p.199. 나를 감정 쓰레기통 삼는 사람들.  부모와 자식 간, 특히나 감정적으로 깊이 교류하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특히 이런 경우가 많다. 남편과 싸울 때마다 딸에게 남편 욕을 하고, 남편을 습관적으로 비난하면서 딸이 자신의 감정을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       -  그 해 엄마도 뒤늦은 갱년기였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이해할 순 있지만 끈적하게 남은 감정의 오물은 아직 분리 수거되지 않았다.



p.253. 어떤 소설은 재미가 없어 던져두었다가 몇 년 후에 다시 보니 충격적으로 좋기도 하고 어떤 소설은 한때 참 좋아했는데 다시 보니 시시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어떤 시기에 잠깐 거쳐 간 뒤 거기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  10대의 마지막에 이문열 작가의 글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날렵한 글과 통쾌한 스토리, 신박한 표현력에 밤이 새는 줄 몰랐다. 그의 해박한 지식에 몇 번을 감탄했던가. 마흔이 넘어 다시 집은 책을 읽다 잠시 덮었다. 생각만큼 재미나지 않다. 미로 같은 복선을 꿰뚫은 통쾌함은 앞 소절에서 간파된다. 표현과 스토리는 익숙하다. 십 대에서 이십 년을 훌쩍 넘긴 사이 관처럼 판단하고 본능적으로 추측해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은 내게 노련한 삶의 때가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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