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생애 첫 해외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있다. 비싼 물가도 그렇지만 특히나 도로마다 가득한 외제 차를 보고 경제 강국임을 여실히 느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본은 어디를 가나 비싼 외제차 즉 도요타가 그렇게 많더란다.
마흔에 떠난 첫 해외여행으로 그의 마음은 설레었을 것이다. 여행사의 패키지 프로그램에 끌려다녀도 피곤함보다 신기함이 컸고,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이지만 자신과 다른 그들을 신기해했다. 자신의 차라고는 중고차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그의 눈에 띈 도요타 로고는 철저히 부의 상징이다. 첫 해외라는 흥분과 동경에 외제차인 도요타를 많이 가졌기 때문에 일본은 잘 사는 나라라고 확신한 그에게 당신의 경험 중 일부 오류가 있다고 증명한들 그가 느낀 충격이 덜해질까. 그의 상식이 우리의 상식과 통하는 어느 날이 온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해를 끼치지 않는 한 다르다고 지적할 필요가 없다. 3일간의 여행으로 일본을 완전히 분해하는 그에게 점심시간을 온전히 할애해주는 것으로 나의 아량은 끝났다.
짬뽕 같은 상식
얼리어댑터(Early adapter)는 아날로그만이 휴머니즘이라고 고집하는 사람과 혹여뒤처질까봐 꾸역꾸역 디지털을 쫓는 사람과 섞여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대화가 어렵다. 급식체, 신조어, 줄임말 등의 문제가 아니다. 대화의 벽은 상식이 다른 데서 시작한다.
상식은 ‘정상적인 사람이 깊은 고찰이나 설명을 하지 않아도 분명한 것’이다. 이미 ‘정상’이라는 단어의 해석이 애매하기에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가 뒤틀린다. 과거의 옳음이 지금도 유효한지 의문이며, 어제의 비상식은 오늘의 상식이 될 수 있다.
SNS는 천천히 습득되는 지식을 기다리지 못한다.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지식 플랫폼이 즐비한데 굳이 진리를 고민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듣고, 보고 싶은 것만 찾는다. 편향된 정보 중 거짓을 구별할 생각 지도가 없으면 귀는 닫히고, 자연히 비슷한 사람과만 관계를 맺는다. 자신과 다른 이는 틀렸다고 정의하는 시대, 우리의 상식은 거짓과 진실이 버무려진 짬뽕에서 육수의 재료가 무엇인지 찾아야 할 만큼 어려워졌다.
그릇은 인식의 한계다.
깜냥이 간장 종지만 한 사람은 대접의 양을 담을 능력이 없으며 소주잔만큼의 양이 담긴 사발에선 빈 소리가 난다. 너는 왜 그뿐이며 이해하지 못하냐는 무능력에 대해 쉽게 비판할 때마다 그릇이 떠오른다. 사람은 가진 인식만큼 그릇이 된다. 우린 모양이 다른 그릇이다. 서로 다른 덕에 밥상에 이런저런 반찬이 올라갈 수 있고 12첩 반상이 가능하다.
이해와 오해의 한 끗 차이는 사람의 깜냥에 달렸다. 각각의 그릇 역할을 통감할 때 비로소 우리의 상식과 비상식의 교차점이 생긴다. 네 탓과 내 탓이 아니다. 밥은 밥그릇에, 간장은 종지에 담겨야 제맛이다. 밥이 간장을 비웃지 말고 종지는 사발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정해진 제 운명의 그릇에 실망한다면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릇은 언제고 다시 빚을 수 있다. 다만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그릇이 있다는 걸 모르고, 모든 사람이 자신 같은 간장 종지라는 맹신을 두려워해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