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시대, 식사 때를 제외하곤 얼굴을 노출할 수 없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고, 이물 없이 말 거는 일은 조심스럽다. 마스크 안의 웅얼거리는 말을 듣기 위해 집중하는 일, 타인을 향한 관심이 이토록 컸던 적이 얼마만인가. 말 잘하는 사회, 말로 죽이는 사회에 살다 보니 땅바닥을 쪼는 새를 보면 우리가 뱉은 말이 하늘을 메우는 바람에 갈 곳이 없나 싶어 미안하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오늘 떠든 말이 쿡쿡 마음을 찌른다. 너나없이 말하지만 듣는 사람이 적은 사회에서 “나는 너를 들으련다. 네 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
이런 동무 하나 얻는다면 세상 참 살맛 나겠다.
잔인하고 아름다운 우연
미지의 현장에 '나'를 출연시키는 상상은 설렌다. 영화배우였다가 춤추는 무희가 되고, 배고픈 운동가이다 몽골 어느 너른 풀밭의 목동이 된다. 여행의 목적지는 바뀌어도 출발은 언제나 ‘지금 여기’이다. 활주로를 박찬 비행기의 기체가 들리고 덜커덩 바퀴가 움직이는 순간, 자신이 가는 곳은 돌멩이도 다를 거라는 기대에 설렌다. 여행을 할 땐 돌아올 걸 염려해서 출발을 멈추지 않는데, 사는 일은 다가올 내일이 걱정돼 오늘을 주저하는 이유는 뭔가.
여행의 묘미는 우연과 인연이다. 계획한 일과 예상치 못한 사연이 섞인다. 머리칼을 헤치는 바람은 그냥 바람인데 여행지에선 낯설다. 이방인이 된 여행자가 마음의 무장을 해제할 때 모든 움직임은 기적이 된다. 낯선 사람과 불편한 손짓 발짓으로 나눈 대화는 너는 이곳이 낯설 테니 모를 수 있다는 이해와 이방인을 대하는 적당한 거리감, 간혹 만나는 뜻하지 않은 친절 때문에 즐겁다. 사람과 삶이 지쳐 떠난 여행이지만 결국 사람을 만나 사람 이야기를 하고 사람에게 안착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며 헤어지는 인연은 신이 준 아름답고 잔인한 우연이다. 우연을 만나 인연을 엮는 여행자에게 시간은 꿈꾸는 현재형이다.
꿈꾸는 삶
발작 같은 두통과 먹먹한 가슴 통증이 생길 때, 상상은 눈앞의 문제로 두꺼워진 생각을 지운다. 딱딱한 마음의 근육을 이완시키는 상상이 곧바로 기적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서 저만큼 걸어오는 우연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삶이라는 여행에서 내일은 늘 도착하지 않은 목적지이다. 한 걸음 내디뎌야 여행이 시작하듯, 상상하는 연습을 하자. 날마다 밥 먹듯이 하다 보면 버티는 삶이 꿈꾸는 삶으로 바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