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년시절 영등포

by 낭만딴따라


1980년, 영등포의 밤은 싸늘했다.

역 뒤로 뻗은 철교 아래의 뿌연 백색 등은 자주 점멸했다. 초저녁 그림자가 늘어지면 무허가 술집의 영업이 시작되고 뽀얗게 분칠 한 언니들이 별처럼 등장했다. 어둠이 골목을 완전히 정복한 시각, 깡마른 언니의 웃음소리와 사냥 나온 취객의 혀 짧은 싸움 소리가 엉켰다. 비명인지 웃음인지 이름 없는 소리가 한창 익을 때쯤이면 영락없이 자정이다.

OB 맥주 공장 굴뚝에선 아침마다 하얀 기둥이 솟았다. 어린 꼬마는 구름과 굴뚝 연기가 몽골 피어오를 때마다 천국을 상상했다. 유치원을 가지 않아 하루 종일 무료한 나는 굴뚝과 하늘의 구름이 붙었다 떨어지는 걸 한참 동안 쳐다보곤 했다. 공장 뒤로 용달차가 먼지 날리는 길을 따라 대충 2m로 올린 비탈진 담장 안에 동네가 있다. 마주 선 20여 집이 열 맞춘 둔덕 어귀 끝에 원불교 교당의 하얀 시멘트 벽이 저녁마다 석양으로 붉게 탔다.

나는 동네 한가운데 칠 벗겨진 녹색 문이 바람 소리에 맞춰 기분 나쁜 울음을 내는 단층집에 세 들어 살았다. 대문 왼쪽으로 재래식 화장실이 있어 입구는 늘 똥내가 진동했다. 주인집을 제외하고 총 네 가구가 살았는데, 세입자는 현관으로 쓰는 얇은 베니아판 위에 1, 2, 3 번호를 써서 서로를 구별했다. 문을 열면 시멘트 바닥 위로 디딤돌과 미닫이 방문이 있다. 아마 처음엔 방문만 있던 것을 세 놓을 요량으로 주인이 합판을 달고 구들장을 놓아 살림하는 셋방으로 개조했다. 세입자는 구들장 위에 되는대로 판자를 박아 그릇과 살림도구를 놓는 찬장으로 썼다.

나의 집은 현관 왼쪽, 그러니까 ‘변소’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1호 방이었다. 변소와 문 사이에 난 옥상 계단 덕에 한밤중 볼일 보러 나온 다른 세입자가 나의 집에 잘못 들어오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신정동 달동네에서 갑작스러운 산통에 엎어진 엄마를 옆집 할머니가 대충 눈에 보이는 가위로 탯줄 잘라 나를 낳은 후, 엄마는 땅에 내려와 살겠다는 일념으로 2년 만에 이곳 영등포 뒷골목에 정착했다.

일자로 나란한 네 개의 합판 문 맞은편에는 주인이 살았다. 커튼으로 가려진 유리문으로 출입하는 주인집은 마당에서 세 계단을 올라야 했다. 여름날, 마침내 유리문이 열렸을 때 나는 처음 ‘마루’라는 걸 보았다.

'저게 뭘까?'

방이 두 개나 있는 것도 신기한데, 방과 방 사이를 주인아주머니가 맨발로 걸어 다니는 걸 보고 놀라움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우리 집이 하루에 한 뼘씩 커지는 꿈을 꾸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