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칼바람 사이로 햇빛이 온기를 내기 시작한 2월 하순, 무릎까지 오는 점퍼를 걸친 큰 키의 그는 오리지널 서울 사람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담배 가게에 세든 그의 얼굴을 반이나 가린 마스크와 모자 때문에 우리는 그를 ‘마스크’라 불렀다.
담배 가게 아저씨가 버려두다시피 한 부엌 없는 하꼬방에 처음 세 들었을 땐 마뜩잖았지만 그는 말수가 적을 뿐 별 문제가 없었다. 그에게서 은밀한 사연을 기대한 몇몇 동네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졸랐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문 배달한다는 게 다였다. 호기심이 심드렁해지는 한 달 후, 밥벌이에 고단한 동네의 자연스러운 일원이 된 그는 신문 배달을 제외한 시간을 주로 우리와 보냈다. 등하교와 저녁때까지 보호자 역할을 해주는 '마스크' 덕에 어른들은 적잖이 짐을 던 홀가분함을 공유했다.
아침 8시 반이면 우리는 학교에 가기 위해 전봇대에 모였다. 선두에 선 그의 등에는 책가방이 가득이다. 덜렁대는 신발주머니를 양손에 든 그를 대장 삼아 우르르 행진했다. 깔깔거리는 중에 혹 누가 뒤처지거나 어린 동생이 짓궂은 장난을 당할까 뒤에서 살피는 고학년 언니 오빠는 영락없는 보디가드다. 이따금 그가 뒤를 돌면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은 책가방이 날개를 펼쳐 독수리가 되었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하교하는 학교 문방구 앞에는 날씨에 맞춰 서너 개의 우산과 짝이 다른 벙어리장갑을 손에 든 그의 마중이 있다. 색색의 딱지와 인형을 구경하느라 정신없는 우리 앞에 노란 병아리를 실은 장수가 나타나면 함성과 병아리 삐악 소리로 한바탕 장터가 되었다.
가방을 진 그를 따라 스무 걸음쯤 갔을까. 모종의 기대로 일제히 멈춘 곳은 목요일에 오는 핫도그 장수 앞이다. 한 입 베어 물때 퍼지는 비릿한 분홍 소시지는 씹자마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요물이다. 고기라고는 명절과 가장의 생일 때에야 맛보던 우리에게 핫도그는 참기 힘든 유혹이다. 빵빵하게 부푼 튀김옷을 혀로 살살 돌리다가 바삭한 겉을 벗기면 단내 나는 뽀얀 밀가루 속이 나온다. 조심히 뜯어 먹으면 마침내 막대기에 분홍 소시지만 남는다. 꼬챙이에 꽂힌 보물을 하늘로 치켜들며 신난 우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조금씩 아껴 먹었다.
우리는 마스크 오빠가 웃었다는 걸 몰랐다. 한 달에 두 번씩 찾아온 핫도그 데이가 그의 월급날이었다는 건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집에 도착하면 정확히 한 시간 동안은 숙제 시간이다. 전봇대 앞에서 숙제 검사를 받다가 괴괄스런 몇몇 남자아이가 핑계를 대지만 소용없다. 이때만큼은 단호하다.
“안돼. 숙제해야 해. 아프면 집에 가. 다른 애한테 옮아.”
매달려도 소용없다. 지금 제외되면 낙오됨과 동시에 저녁 내내 지루한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니 얼른 숙제를 해치우는 게 장땡이다.
외진 동네에서 함께라면 마냥 좋은 고만고만한 우리가 즐기는 딱지치기, 인형 놀이, 다방구는 좀체 물리지 않았다. 숨차도록 뛰고 왁자하게 떠들다 어느새 붉은 해가 기울어지면 상기된 얼굴로 시끌벅적한 안녕을 하고 집으로 뛰어야 하루가 끝났던 그곳, 우리와 마스크 오빠가 살던 영등포동 1가의 골목은 유년의 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