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선물

by 낭만딴따라

경기를 잘 하던 나는 학교에 입학하고 강도가 들거나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는 상상 때문에 종일 훌쩍였다. 엄마는 1학년 내내 담임에게 호출당했다. 호된 고뿔을 치러야 한 계절을 넘기던 나는 말없이 9살이 되었다.


아이들과 어깨동무나 손을 잡는 스킨 쉽을 절대 하지 않는 그에게 장난 삼아 달라붙으면 마스크 오빠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씰룩이는 볼과 반짝이는 눈은 매몰차지 않았다. 얼굴의 반은 가려졌지만 자주 마스크가 들썩이는 걸 동네 아이들 누구나 알아차렸다.


땀띠 꽃이 피고 지는 한 여름을 버티다 스산한 첫가을 바람에 몸살을 치른 뒤, 오늘은 나가도 좋다는 엄마의 허락에 전봇대로 나갔다. 비석 치기에 여념 없는 아이들 뒤로 휘둥그레한 눈의 마스크 오빠가 휘져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성큼 걸어온 그는 잠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슬그머니 내 손을 쥐었다. 처음 스친 그의 손은 살집 없이 노릿하고 거칠었다. 손 안에는 붉은 털실 인형이 있었다. 동그란 얼굴에 머리털만 붉은 인형은 아침 동산에 뜬 해 같았다. 의아한 얼굴로 오빠를 쳐다보자 잽싸게 검지 손가락을 마스크에 대더니 시비 붙은 남자애들한테 뛰어갔다. 순간 나는 그가 웃었다는 착각이 들었다.


동네에서 어린이날이나 생일을 치른 아이는 없었다. 아빠의 생일날 모처럼 고기나 생선 반찬이 상에 올라오거나 크리스마스 날 교회에서 얻은 과자, 명절 귀향을 다녀온 집이 내는 기름내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아무 날이었다. 입학식 날 주인집 딸이 작다며 준 빨간 체크무늬 카디건을 제외하면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내 인형이 생겼다. 그것도 마스크 오빠가 주었다는 비밀스러움에 설레어 별 것 없는 찬거리에 바쁜 엄마 주위를 맴돌며 한참 자랑했다. 그 날이후 혹여 잃을세라 베개 밑에 둔 인형을 밤마다 손으로 확인하다 까무룩 잠들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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