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낯선 방문

by 낭만딴따라

“뎀뿌라, 맛있는 뎀뿌라가 왔어요.”


확성기를 탄 어묵 장수 소리에 엄마한테 받은 백 원을 쥐고 알루미늄 통을 인 자전거로 뛰어갔다. 김 서린 천을 벗기자 향긋한 비린내가 진동했다. 넓적한 어묵 열 장을 봉지에 담은 아저씨는 특별히 서비스라며 한 장을 돌돌 말아 내 손에 들렸다. 공짜 어묵에 신나 맞은편 담벼락에 쪼그려 짭조름한 어묵을 씹었다. 그때 담 저편으로 말소리가 들렸다.


“요전에 총각김치가 맛 들여서 갔더니 없더라고. 그게 쉬이 낫는 게 아닌데.”

담배 가게 최 씨가 그러는데 며칠 전엔 웬 청년이 와서 자고 갔는데, 아침에 둘이 대판 싸우더래.”


“누구래? 당최 사람 만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담배 가게 말이 형인 거 같대. 여기서 꼴이 그게 뭐냐며 야단치는데, 마스크 총각도 제법 받아치더라는데? 소리 지르면서 다신 오지 말라 하고.”


“집 나왔나? 그래도 뭐 이젠 어른인데. 그나저나 언청이인 걸 누가 보긴 본 거야?”

“그 왜 교당 옆집에 사는 중학생 있잖아. 걔가 아침 일찍 지나다가 막 신문 배달하고 온 총각이랑 딱 마주쳤는데 민얼굴에 요기 가운데로 쪽 째진 걸 봤대.”


“에고야 진짠가 보네. 젊은 사람이 어쩔까이. 배달한 돈으로 옷을 사나 술을 먹나 애들이랑 놀면서 먹을 거 사주고 하는데 그런 총각 없지. 지난번에 우리 영신이가 저 앞 한길에서 차에 치일뻔한 걸 총각 덕에 살았잖아. 그래도 일절 공치사를 안 하는 거 보면 사람이 됐지. 에고. 그놈의 마스크는 한여름에도 주야장천 쓰더니만 다 이유가 있네. 쯧쯧.”


‘언청이? 뭐가 찢어졌다는 거지?’

마스크 오빠 얘기에 당장 엄마에게 물어야겠다 싶어 먹다 만 어묵을 움켜쥐고 뛰었다.




마스크 오빠가 다시 입소문에 오른 건 스산한 가을바람을 타고 슬며시 동네에 들어온 검정 승용차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동네에 ‘자·가·용’이 있다는 사실에 술렁였다. 주황 택시를 탄 경험담이 한 달 내내 자랑거리가 되는 동네였다. 당연히 윤기가 번질거리는 검은 자동차의 존재는 영 예사롭지 않았다. 어른들은 갑자기 동네가 고급스러워진 뿌듯함과 낯선 이질감에 긴장했다.


사람 눈을 닮은 반짝이는 헤드라이트를 계속 주시했지만 아무도 자가용의 주인을 보지 못한 채 위대한 물건은 다음 날 흔적을 감췄다. 오지랖 넓은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밤사이 사라진 자가용에 웬 여자와 마스크 오빠가 타고 있다고 했다. 낯선 자가용 손님은 그렇게 밤이슬을 타고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총각이 부잣집 아들인가? 여자가 좀 늙어 뵈니 애인은 아닐 테고 엄만가 봐.

“가출이네. 그러니 그런 부잣집 아들이 신문 배달하고 사시사철 꼬질꼬질한 잠바 하나만 입고 다니지.”


“사람이 당최 말이 없으니 원. 의뭉스럽기는.”

“일요일엔 집에도 없다며. 애들도 일요일엔 안 모이잖아.”

“찢어진 거 고치려고 병원 다니나?”


“그게 고쳐지나. 원래 태어날 때부터 병신으로 나오는 건데.”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죄받아 사달이 난 겨. 그러니 처음부터 그러지.”

“옴마야. 지난번에 왔었다는 총각은 멀끔했다는데?”

“혼자 빙신으로 태어났구먼.”


“지난번에 애들이랑 학교에 같이 못 간 적 있었잖아? 애 중에 경이가 제일 크잖아. 걔가 갔더니 안에서 끙끙 앓는 소리 내면서 울더래.”

“승식이 말로는 술 냄새 같다는데?”


“젊은 사람이 째진 얼굴에 연애를 못 하니 생병이 나지. 혹시 거기 뭐냐 색싯집 다니는 거 아냐? 한창 때잖아.”

“아이고. 하긴 여자 생각나지.”

“울 딸내미 괜찮겠지? 거시기 뭐냐 흉악한 그런 거 있잖아.”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네. 혹시 죄짓고 수배 때문에 뭐냐 변장하려고 마스크 썼을까? 애들이야 흉터를 언청이로 잘못 볼 수 있지.”


“하긴 애들하고야 놀지 우리하고는 말도 잘 안 하잖아.”

“우리가 여태 뭘 믿고 애를 맡겼나 몰라. 별일 없었겠지?”

“안 되겠어. 이참에 애들 단도리 좀 해야지. 뭐 하고 다녔는지 어찌 알아.”


소문이 소문을 낳아 동네는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결기를 다졌다. 아이들은 며칠 동안 아리송한 취조를 당했다. 어른의 다그침이 계속되자 아이들도 희미한 두려움이 생기더니 하나둘 위험한 상상을 떠올렸다. 처음 제 자식을 돌봐 준 고마움은 차츰 불경한 의도로 의심됐다. 평생을 노동자로 산 사람들은 신원 미상의 ‘마스크’를 내리깔며 누린 우월감을 은밀히 즐겼음을 알았지만, 이제라도 그가 위험인물임을 발견했음에 안도했다.

가을이 금세 누레지는 가 싶더니 성급히 겨울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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