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오빠가 돌아왔다.

변심

by 낭만딴따라

오빠가 돌아왔다.

하지만 예전의 동네가 아니다. 주인 없는 방은 고립됐고 그는 다르다는 이유로 남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 등교하고 하교 후엔 외출이 금지됐다.


자신의 입술이 벌어지는 걸 상상하다 우는 아이와 불 켜진 방 안에 입술을 뒤집거나 흰자위를 까며 자식에게 엄포를 놓는 어른이 생겼다. 여자아이는 오빠에게 납치당하는 상상을 하고 남자아이는 누가 마스크를 먼저 벗길 것인가 내기했다. 이제 전봇대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 그런 건 아니다.

내 친오빠는 공장 반찬으로 만든 어묵볶음이나 콩자반을 몰래 가져갔다. 나 역시 다시 만난 오빠가 반가웠지만, 가뜩이나 비실대는 몸이 잘못되면 영영 학교 갈 수 없다는 말에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전봇대만큼 긴 그림자를 가진 오빠의 입과 코가 붙었다는 게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밥도 못 먹고 말을 할 수 없는데 오빠는 밥을 잘 먹고 잘 말하고 잘 웃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오빠는 빙긋 웃으며 내 머리를 톡톡 치더니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몸을 뺐다. 뒷걸음치는 내 눈에 허공에 뜬 그의 손이 보였다.


가방을 메고 인형을 쥐여주던 손이다. 손가락 사이에 끼운 핫도그를 장난스레 나눠주고 숙제 검사하다 알밤을 멕이며 가위바위보만 했다 하면 이기던 손이다.

왜 나는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따라 소름이 돋은 걸까. 단지 마스크 안이 궁금했을 뿐인데 손이 닿자마자 불에 덴 듯 왜 뜨거웠던 걸까.


어찌할 바 모른 나의 눈에 오빠의 당혹한 눈동자가 꽂혔다. 그의 눈에 며칠 전 강아지에게 쫓기던 낯익은 소녀의 겁에 질린 얼굴이 비쳤다. 순간 뭔가 반짝였다. 오빠는 거부당한 손을 든 채 꼼짝 않고 나를 응시했다. 나는 무슨 말인가 하려 했는데 온 몸이 떨리고 가슴이 꽉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울면서 집으로 뛰어갔다.

행렬이 없어진 학교는 재미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오빠가 어색했고, 오빠도 눈에 띄게 불편해했다. 오빠의 잠바에선 서릿발 같은 차가움이 묻어났다. 나는 전봇대 대신 분내 나는 4호 방 언니들과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친구와 오징어 게임을 했다. 한 발로 뛰며 선을 넘다 균형을 잃고 넘어진 게 하필 돌부리였다. 피는 안 났지만 눈물이 핑 도는 통증에 주저앉았다. 놀라 다가온 아이들 틈에서 나는 마스크 오빠를 찾았다. 저만치 떨어진 곳의 그가 잠깐 이쪽을 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때만큼 그의 등이 커 보인 적이 없다. 울컥 뭔가가 목 언저리에 걸렸다. 순간 나는 발딱 일어나 입을 앙다물고 꼿꼿이 담벼락에 섰다. 여전히 달래러 오지 않는 것이 못내 서운해 차가워진 손을 주머니에 넣었을 때 작은 보드라움이 잡혔다. 붉은 털 인형을 보자 왈칵 쏟아지는 마음에 오빠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손에 쥔 인형을 내밀었다. 어리둥절한 그의 눈과 마주치자 가슴이 울렁거려 인형을 던지고는 뒤도 보지 않고 집으로 뛰었다.


그해 가을은 겨울의 냉기만큼 차가웠다.

계절 맞이 몸살로 고열과 구토를 반복하던 나는 며칠을 앓아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