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날의 기억

by 낭만딴따라

차가운 겨울바람을 탄 지루함이 방학 내내 이어졌다. 친구에게 빌린 공책을 주려고 나선 무료한 오후, 전봇대마저 섬찟한 한기에 웅크렸다.




맞은편에 나란히 위치한 네 개의 대문을 지나면 친구의 집이다. 현관문을 두드리며 친구의 이름을 불렀지만 기척 없이 바람만 윙윙거렸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하는 생각에 곱은 손으로 두드리자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집은 적막했다. 가슴팍에 공책을 안고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재차 친구를 불렀다. 한 켠에 흙만 남은 화단을 보자 여기도 채송화가 피는지 궁금하던 찰나였다.


대여섯 걸음 앞의 커튼이 흔들린다 싶더니 미닫이문이 천천히 움직였다. 친구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고 한발 내딛자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머리 하나가 나왔다.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으로 덮인 정수리가 쑤욱 나오더니 이내 피둥피둥한 허연 얼굴이 드러났다. 짙은 눈썹 아래 웃는 건지 감은 건지 알 수 없는 멍한 눈이 허공에 떠있다. 벌어진 입술이 너무 두툼해서 사람 얼굴보다는 입 모양을 한 풍선에 가까웠다. 바람맞은 끈적한 침이 이빨 사이로 흘러 더러는 러닝셔츠에 붙고 더러는 너울거리다 땅에 끌렸다.


“으허으허어엉”


벌어진 입 사이로 울음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보다 족히 두 배는 됨직한 덩치는 천천히 상체를 내밀더니 다리 하나가 문밖으로 빠지자 갑자기 손을 하늘로 쳐들며 달려들었다. 겨울 추위가 무색한 러닝셔츠에 아랫도리가 불룩한 속옷 차림이었다. 억지로 지은 웃음 탓에 한쪽 입이 일그러진 덩치가 뛰려 하자 제멋대로 움직이는 다리 때문에 흡사 나무 인형 같았다.


낯선 얼굴의 덩치, 사방으로 날리는 침과 칼바람에 질려버린 나는 그대로 굳었다. 주위의 공기가 일제히 하늘로 올라가 세상은 진공 상태가 되었다. 갑자기 덩치의 얼굴이 화면을 뚫고 코앞까지 다가왔다 싶은 순간, 땅과 하늘이 수직으로 빠르게 자리를 옮기는 걸 느끼며 쓰러졌다.


얼마쯤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는 친구의 집이 저만치 물러가고 있었다. 자꾸 땅이 흔들려 멀미가 났다. 문 앞까지 나온 덩치와 나의 거리는 계속 뒷걸음쳐지고 있었다. 잠시 후 집 앞에 내려진 내가 힘없이 올려다본 곳에는 꼬질꼬질한 마스크를 쓴 오빠의 눈이 있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지려 했다. 그런 나를 빤히 보던 오빠는 대문을 열어주곤 천천히 뒤돌아 갔다.

그의 뒷모습이 뿌옇게 일렁이더니 영화처럼 주위가 일시에 내게서 물러나는 걸 느끼며 다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