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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아미 Oct 26. 2021

괜찮은 ‘척’했더니,
정말 괜찮아졌다.

조울증 발병 후 12년 차, 매일 약을 먹고 있습니다.



조울증이 발병하고 4년 정도가 지날 즈음, 발작을 일으켜 또 한 번 병원 신세를 지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날 함께 있던 동생이 나를 살렸다는 것과 ‘조울증’의 굴레를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것이다. 조울증 치료를 위해 처방을 받았던 있던 약은, 발작을 일으켜 치료를 받게 된 신경과에서 처방한 약과 종류가 같았다. 


MRI, 뇌파검사, CT 등 정밀검사를 하고 다소 가벼운 병명으로 갈아탔다. 신경과 교수는 ‘경련’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쉽게 설명하자면 ‘간질’의 증상이 나타난 것인데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아마 건강한 사람에게 일어났다면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내심 다행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딸에게 붙어 있는 ‘조울증’이라는 딱지를 어떻게든 떼고 싶었을 것이다. 새로운 딱지가 ‘경련 환자’일지라도. 심리 상담을 해 온 교수님의 동의하에 신경과로 외래를 다니게 되었다. 단, 조울 증상은 재발률이 매우 높고 다시 발병하면 심각성이 더 높아진다고 조금이라도 이상 증세가 생기면 언제든 찾아오라는 이야기를 남기셨다.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신경과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조울증이 생긴 지 4년 만이었다. 조울증 치료를 위한 심리 상담도 약도 끊게 되었다. 하지만 발작이 1번으로 끝이 날지는 미지수이기에 매일 약을 먹는 일상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조울증 딱지가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주변에는 아프다는 사실을 숨기며 지냈다. 이제는 남들 몰래 약을 먹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인스타그램에 책 서평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18년도 봄이었다. 건설회사의 C/S 부서의 매니저로 9시 출근, 6시 칼퇴근을 하던 시절이다. 건실한 남자 친구와의 연애도 어느덧 8년 차. 누가 봐도 참 평범한 30대 여자 직장인이었다. 멀쩡하게 지내는 듯 보였겠으나, 마음속 깊숙이 불안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언제 다시 그 무서운 병이 나를 찾아올지 두려웠고 혼자 있는 시간엔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전히 책이 내게 참 좋은 친구이자 치료제였다는 사실이다. 좋아하는 독서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평범한 다른 사람들처럼 책을 읽은 것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인스타그램에 처음 올렸던 리뷰를 기억한다. 마이클 바스카의 《큐레이션》이다. ‘과감히 덜어내는 힘’이라는 부제에 끌려 읽은 책이다. 책의 내용은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하는 역할이 앞으로 모든 산업에 필요한 역량이 된다는 것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책에서 이야기한 미래가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새삼 의미 있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난 지금 인스타그램 안에서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북(book) 큐레이터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를 돌아보니 인생을 큐레이팅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로는 괜찮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방향을 제시해주고 이끌어주길 바랐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인스타그램에 책을 올리는 일들이 쌓이니 나도 모르는 새 치유가 되고 있던 것이다. 


스스로 만든 SNS 세상 속 ‘가면’을 쓰고 괜찮은 ‘척’했더니 정말 괜찮아진 것이다. 이렇듯 인스타그램에 서평을 쓰게 된 계기가 남다르다. 고백한 조울증 때문이니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리뷰를 올리며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소통하니 더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 올렸던 책 한 권이 두 권이 되고 열 권 스무 권 그렇게 1년 동안 100권이 되었다. 


독서를 통해 변한 점이 있다면 자존감이 높아진 것이다. 늘 불안이 맴돌던 마음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치유의 시작은 ‘책 읽기’였으나, ‘책 읽기를 기록’하는 ‘쓰기’를 통해 마음의 병을 극복하게 되었다. 그 공간이 바로 인스타그램이었고 그렇게 인스타그램은 나를 구해주었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함을 주저하지 않는다. 조울증으로 매일 절망 속에 살았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제 이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강한 사람이 됐다. ‘책 읽는 여자’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글을 쓰던 나는 이제 ‘책 읽는 엄마’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삶, 책 읽는 엄마로 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괜찮은 '척' 했더니, 정말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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