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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an Jul 31. 2019

ANIMA (2019)

톰 요크이기에 가능한, 톰 요크만의.

넷플릭스에 새로 공개된 ANIMA. 영상과 안무, 그리고 그 음악에 관하여.



톰 요크?


톰 요크 (Thom Yorke)는 우리나라에서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Creep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영국의 얼터너티브 락 밴드, 라디오헤드 (Radiohead)의 프런트맨이자 보컬이다. 그는 밴드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솔로 아티스트로도 많은 활동을 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럴 때 라디오헤드와는 사뭇 다른, 자신만의 색을 확실히 뽐내는데 가장 최근에 발매한 ANIMA 앨범에서 가장 다듬어지고 완성도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아, 이 부분은 개인적인 의견이다!)


톰 요크는 2006년 The Eraser를 시작으로,
Tomorrow’s Modern Boxes, ANIMA 앨범을 발매하고, Suspiria룰 포함한 총 6편의 영화의 OST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다른 유능한 뮤지션들과도 Atoms For Peace라는 밴드로도 활동한다.



ANIMA의 조금 특별한 시작


뮤지션이 음원을 발매하면 홍보를 위해 뮤직비디오도 함께 공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혹은 직접적인 광고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ANIMA가 처음 대중과 맞이하는 순간은 조금 달랐다. 독창적이면서 특별한, 톰 요크와 너무 찰떡같은 방법이었다.


시작은 런던의 지하철 광고였다.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앉았을 때 물건 올려놓는 선반 바로 위에 가로로 길게 쭈르륵 있는 광고를 생각하면 되겠다. 거기에 어느 날부터 조금 특이한, 말이 안 되는 광고가 붙기 시작했다. 이 광고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실제 지하철에 있던 광고이다.
당신은 꿈을 기억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이 글과 함께 Dream Camera (꿈 카메라)를 만들었다면서 한 번호로 전화를 하라고 되어있었다.

이 광고를 처음 보고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 ‘또 블랙 미러(넷플릭스 시리즈)의 새로운 시즌 광고구나’와 ‘이건 톰의 새로운 무언가 일 거야!’.

실제로 저 번호로 전화를 하게 되면 자동 음성메시지가 들린 후에 몇 분 가량의 음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이전 라이브 공연에서 선공개한, 앨범 ANIMA의 수록곡인 ‘Not The News’의 일부였다. 전화가 아닌 문자를 하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자동 응답 문자가 - 마치 우리가 상품에 대한 질문을 할 때 오는 답장 같은 - 돌아온다. 이 문자의 내용 또한 이전 톰의 인터뷰에서 힌트 아닌 힌트를 찾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 수 있는, 모르는 사람은 궁금하게 만드는 조금 기이하면서도 재미있는 광고는 여러 사람의 이목을 끄는 데에 성공하였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지 않는가?



앨범 발매, 그리고 넷플릭스


그렇게 궁금증 넘치는 광고 이후 앨범 발매가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조금 특이한 영상도 같이 공개가 되었다. 위에서 말했던 뮤직비디오 같은, 또 뮤직비디오는 아닌 듯한 약 15분 길이의 영상이다. 처음 공개되었을 때에는 아주 소수의 극장에서 상영을 했었다. (물론 우리나라는 한 군데도 없었다.) 나름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이 친구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무제한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돈 주고 영화관에서 보지 않아도 된다! 물론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도 이제는 못 보지만.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따봉은 필수.


”아니 그래서 15분짜리 영상이 뭔 내용이야?”

이 긴 뮤직비디오(이자 짧은 영화?)에서는 총 세 곡의 노래가 나오고, 모두 신보 ANIMA의 수록곡이다. Not the News, Traffic, Dawn Chorus. 세 곡이 연속적으로 흘러나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간단하게 스토리에 대해 얘기하자면 - 스포일러는 아니다! 스포일러 될만한 껀덕지가 없는 영상이다 -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톰으로 시작이 된다. 졸고 있던 톰은 어떤 한 여인과 눈을 마주친다. 딱 봐도 사랑에 빠져버렸다! 어느 정거장에서 내리게 되는데, 이 여인이 두고 내린 박스를 톰이 가져다주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같이 트램에 탑승하게 된다. 톰은 자리에 기대고, 햇빛이 그의 얼굴에 내리쬐면서 끝이 난다. 엄청 짧지만, 이게 다이다. 15분밖에 안 되는 영상에서 엄청난 스토리는 기대하지 말자!


무얼 얘기하고 싶은 걸까


* 이 부분부터는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감상과 추측이 점점 많아진다. 그래도 그럴듯한 추측들이니 한 번 읽어볼 만하다. (이 역시 추측이다.)


언뜻 보면 지루한 스토리이지만 포인트는 의미와 영상 속의 안무에 있다.

톰은 라디오헤드의 시절부터 언뜻언뜻 무의식, 꿈과 같은 주제에 관심을 나타냈었다. 그리고 이번 앨범에서는 이 생각을 대놓고 보여준다. 참고로 이 앨범은 칼 융의 꿈과 무의식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넷플릭스 영상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데, 시작과 끝을 살펴보면 각각 톰이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말이 거창하게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지 그냥 졸다가 깨는 거다. 결국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저 그의 상상, 혹은 꿈이라는 얘기다. 참, 또 재미있는 포인트는 바로 꿈속의 여인이 실제 톰 요크와 연인 사이라는 것이다. 어쩐지 둘이 너무 연기를 잘한다 했어...


그렇다. 이 둘은 실제 커플이다!

하여튼 이 과정 속에서 보이는 행동이나 안무, 배경이 확실히 현실세계보다는 꿈속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에 더 어울린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거나 사람들이 기괴하게 움직인다던가 되게 이상하다는 느낌을 많이 준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꿈을 꿀 때 아주 현실적인 꿈보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꿈을 꾸는 때가 많을 것이다. 꿈이고 무의식의 세계니까 무엇이든 가능하다. 결국 영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을 통해 이 것이 진짜가 아닌 상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독특한 안무, 이게 대체 뭐지?


바로 위에서 안무 이야기를 별로 안 했는데, 여기서 얘기를 해볼 것이다. 아마 이런저런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톰 요크의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좀 익숙한 안무의 냄새가 났을 것이다. 바로 영화 <서스페리아>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안무가이기 때문이다.


톰과 이 벨기에 안무가 데미안 잘렛(Damien Jalet)은 서스페리아의 작업에서 처음 만났다. 그 후 ANIMA의 제작에 톰이 먼저 데미안에게 연락하여 같이 협업을 제안했다. 그는 톰에게 자신의 이전 작품들을 보여주게 되는데, 톰은 그 중 Skid라는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 아마 15분 영상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일 것이다. ‘Traffic’ 음악에 맞춰 기울어진 흰색의 판 위에서 군무를 하는 부분이다. 원작 Skid도 동일하게 넓은 판 위에서 공연을 펼치는데, 영상 속에서 조금 다른 점은 바로 카메라가 이 판과 평행한 구도로 촬영을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모든 동작은 분명히 경사진 판 위에 있는 듯한데 또 얼핏 봐서는 평평한 곳에 있는 듯하기도 한, 신기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잠깐, 이 원작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자. 원작과 ANIMA 둘 다 내포된 의미를 어느 정도 공유하기 때문에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다만 번역이 아주 잘 된 것은 아니니 원문이 궁금하면 Damien Jalet의 홈페이지에 가서 보시길. 참고로 사이트는 영어뿐이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가 보도록 하자.


Skid는 34도 기울어진 흰색의 플랫폼이 오케스트라 피트에 떨어지는 형태이다. 출입구는 위, 아래 오직 두 곳뿐. 이 곳을 통과하면서 무용수들은 물리적인 이야기를 그리며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작품은 중력에 영감을 받았다. 중력과 사람과의 관계는 무용수들을 움직이게 한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이 작품은 가끔은 위험하기도, 유머러스하기도 하면서 감동적이며 새로운 물리적인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또 물리적인, 감정적인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여기서 다른 이들과의 관계가 보이드의 부름으로부터의 유일한 안정이 된다.
- Damien Jalet 홈페이지에서 일부 발췌.


원작 Skid. Damien Jalet vimeo.


언뜻 보면 거창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주 간단히 포인트를 집어보자면 중력(보이지 않는 힘)과 무의식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데미안이 일본의 지하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출퇴근하는 지치고 피곤한 회사원들이 서 있다가 자리에 앉는 순간 의식을 잃고 자는 모습에서 착안을 했다고. 중력이라는 힘에 저항을 하고 서 있다가 이에 순응하여 앉는 순간 다른 세계(무의식의 세계)로 이끌려간다 - 뭐 대충 이런 느낌이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ANIMA의 시작 또한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톰으로 시작한다. 뭔가 딱 들어맞는 이 쾌감! 이 맛에 배경 공부를 하는 재미가 있다.


자 그럼 이어서 ANIMA 속의 Skid 작품 부분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아보자.

영상에는 3번의 플랫폼 안무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무리에서 도망치려는 톰, 두 번째는 무리의 일부가 되었다가 떨어지는 톰과 무리, 마지막은 떨어지는 무리 사이로 홀로 나아가는 화가 난 톰.

첫 번째 톰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길 원한다. 박스도 떨어지고, 톰도 떨어지고. 결국 내려가는 데에는 성공한다. 내려가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꿈틀대고 있다. 톰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꿈틀대며 앞으로 나아간다.

두 번째 톰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기를 원한다. 먼저 나아가던 집단을 따라잡고, 그 일부가 되어 더 위로 전진해나간다. 하지만 결국 두 번째 톰은 그 군무에 의해 가장 아래로 내려가게 되고, 떨어진다. 올라가는 데에 실패를 한 것이다. 내려온 그는 화가 난 듯이 팔을 휘저으면 다시 나아간다.

세 번째 톰은, 목적지가 없다. 그저 플랫폼 한가운데에 앉아 있을 뿐이다. 주위에서는 사람들이 떨어진다. 톰은 그저 무시하고 묵묵히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과 함께 쓰레기가 불어 닥친다. 톰은 일어나다 균형을 잃고 떨어진다.

첫번째 톰. 넷플릭스 ANIMA의 일부.

보이지 않는 힘, 중력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바로 윗글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겠으나, 뉘앙스와 어디에 포커스를 두느냐를 생각하며 읽어보라.


첫 번째 톰은 불안하다. 뛰는 박자도 다른 이들과는 엇박이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 힘에 순응한다. 뒤엉켜 떨어졌다는 것이 조금 더 알맞은 표현이겠지만, 결국 순응하여 내려간 것이다. 우리의 눈에도 높은 곳에서 엇박으로 뛰고 있는 톰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편해 보인다. 내려간 후, 슬슬 다른 사람들과 동화되기 시작한다.

두 번째 톰은 혼자가 아니다. 무리와 함께 있고,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그 누군가가 빠진다면 안 되는, 그런 모습이다. 이들은 힘을 합쳐 중력을 거스르며 올라간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때쯤, 톰은 점점 내려가게 된다. 당황하는 그는 다시 한번 떨어지고 연쇄작용으로 하나하나, 모두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떨어진 그는 배신감이라도 느낀 듯하다.

세 번째 톰은 떨어지는 사람들 사이로 플랫폼 한가운데로 간다. 목적지가 없지만, 그는 한가운데에 버티고 있다. 마치 지하철 내에서의 목적지는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버티는 모습이다. 그는 버틴다. 하지만 곧 무언가가 불안정해지며 톰은 거기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균형을 잃고 다시 한번 중력에 의해 아래로 내려간다.


최대한 포인트에 맞추어 적어보려 하였다. 톰의 목적지, 진행 방향, 중력,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안정에 대해서 보인다.

피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중력은 항상 존재한다. 이 힘을 이용하여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쉽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그저 순응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위로, 힘의 반대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순간 힘들어진다. 미끄럼틀을 내려가는 건 참 편하지만 거꾸로 올라가는 건 힘이 든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 한다면, 안정적이게 올라갈 수 있다. 두 번째 톰은 무리에 속해 있을 때 가장 편해 보였다. 방해물 없이 올라가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 이와 대비되는 세 번째 톰은 외롭다. 방향성도 그 누구도 없이 그저 중력에 대드는 그는 불안하다.


감독은 여기서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재밌는 트릭?을 썼다.

휘몰아치는 쓰레기 속의 세번째 톰. :(

그 전까지만 해도 화면은 플랫폼에 수평하게, 기울어진 면이 최대한 안보였다. 하지만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굳이 노력하여 이를 맞추지 않았다. 기울어진 것이 티가 나고, 여기서 쓰레기까지 불어 불안정한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그냥 평평한 판에 톰이 앉아있고 쓰레기가 분다면 음.. 분명히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간단한 카메라 워크로 재밌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아주 칭찬해!



교훈


은 없다.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할 수 있지만 그냥 없다고 생각한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어라, 그래야 안정을 찾을 것이다- 뭐 이런 거? 이 영상은 그저 톰의 무의식을 보여줄 뿐이고, 그 과정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인생에서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마음 편히 감상하자. 그럼 왜 이렇게 이것저것 설명한 거냐! 한다면, 그저 위에 장황하게 설명 해 놓은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알고 보면 더 재미를 느끼고 뭔가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리라 믿기에 이 긴 글을 작성한 것이다!


빼꼼 톰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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