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우리에게도 있을까.
어떤 영화는 촬영 기법이 돋보이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주제가 더 드러나기도 한다. 보통은 전자에 대해서 글을 쓰겠지만, 이 영화는 후자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옳다 생각한다. 물론 미장센은 뛰어나고 집어볼 만한 포인트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의 주제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집어내는 것이었고, 이 영화에서는 이미 주제 전달이 너무 잘 되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럼 시작.
슬프지만 코미디스럽고,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영화.
주인공 폴은 거의 만들어진 피아니스트였다. 자신의 미래는 두 이모에 의해 결정되었고,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어릴 적 부모가 죽는 것을 목격한 트라우마 때문에 33살이 되어서도 말을 하지 않는다. 표정도 거의 없는 그는 자신이 입는 옷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다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왜곡된) 기억을 갖고 있었다. 이런 그를 풀어주고 스스로를 찾게 해주는 인물이 바로 마담 프루스트다.
이 영화는 해외에서는 조금 상반된 평을 보였다. 만점을 받기도 했고, 너무 루즈하다는 평으로 1점을 받기도 했다. 하나 확실한 건 한국에서 이 영화는 꼭 한 번은 보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의 학생들은 -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때까지는 -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에 찌들기 시작한다. 영어로 시작해서 수학은 기본이요 이제는 뭘 더 시킬지 상상도 못 하겠다. 그렇게 쭉 학교와 학원에서 생활을 하며 수능을 보고, 학점을 위해 공부를 하다가 취직을 하고 삶을 살아간다. 아마 많이들 이런 쳇바퀴 속에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느끼리라 생각한다. 폴처럼 극단적이지는 않겠지만 '나'보다 내 주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삶을 살았으리라.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을 생각해보자. 내가 정말 이걸 원하는 걸까?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찾자.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찾는 것도 사실 힘들다.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의 성격은 물론이고 내가 무얼 원하는지, 스스로 행복한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으며 앞만 보고 달리면 나 자신에 대해 되돌아볼 시간이 거의 없다. 앞을 보고 달리는데 달리는 목표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당장의 목표야 시험을 잘 보고, 대학 합격, 취직, 시험 합격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땅을 보고 뛰는 것이다. 내 발만 보고 뛴다면 넘어지거나 부딪히기 마련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확실한 목표가 있다면 주위에서는 나를 보고 부럽다고, 좋겠다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이유로. 대체 왜? 사실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게 당연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 슬퍼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하고 싶은 것조차 찾지 못해서 슬퍼하는 것은 정말이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많은 길을 밝혀주어야 할 사회는, 학업이라는 길만을 아주 강하게 비추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너무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영화는 아니니까.
일단 해보자.
내 얘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내가 아는 나의 성격은, 안전한 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플랜 A가 실패했을 경우 B와 C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일단 부딪히는 걸 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하나도 세우지 않아도 일단 부딪히고 싶어 지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그게 취미던, 일이던, 사람 관계던. 그리고 이런 경우에 오히려 해보지 않은 것에 후회가 더 크게 남았지, 해서 후회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안전하게 돌다리 두드리면서 건너는 걸 좋아하는 내가 그냥 막 뛰어다닐 때는 나름 재밌기도 하고 경험이 되어 남더라. 일을 하기 전에 온갖 생각을 하는 내가 생각하지도 않고 즉흥적으로 하다니, 예전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일단 해보자. 뭐 취미를 시작할 수도 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도 있다. 힘들 수도 있고, 막상 해보니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해봐야 이게 똥인지 금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 물론 눈에 빤히 보이는 독버섯 같은 건 굳이 시도하지 말자!
나의 행복은 옆에서 누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냥 기다린다고 오는 것도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옆에서 이모들이 떠먹여 주는 피아노에 행복했었나? 그가 행복했었을 때는 그가 스스로 나서서 찾아나갈 때였다. 하루하루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던 그가 허겁지겁 설레고 원하는 때는 스스로 움직일 때였다. 그러니 우리도 옆에서 누군가에게 조종당하지 말고, 눈치를 보지 말고 한 번 나서보자.
나는 그저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폴들이 빠르게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작가님은 마담 프루스트를 만났나요?"라는 질문에 나는 예!라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자신 있게, 찾아다니고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를 찾으러 떠나는 당신을 항상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