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제출한 후 이제야 책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출판사가 거의 대부분을 맡아서 진행 중이지만 다행히도 작가들(아직 이렇게 칭하기 몹시 부끄럽지만)도 의견을 낼 공간이 충분하다. 그게 우리가 딥 앤 와이드 출판사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원고를 다 썼다!'라고 생각한 후에도 이어졌던 출판의 과정을 간략히 적어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제목 정하기'다.
책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독자들이 책을 집어 들지 말지 0.5초 찰나의 순간을 결정짓는 게 바로 제목일 테니,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20대 초반~30대 후반 여성 타깃 독자층을 어떻게 우리 책에 찰떡같이 이어 줄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서점의 책 진열장 옆에서 '이거 재밌어요, 한번 잡솨봐' 하고 호객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열심히 제목을 궁리할 뿐이다. 책 제목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을 동생과 아주 열심히 했다.
엑셀에다가 때로는 아무 말이나 적어보기도 하고, 그동안 좋았다고 생각하는 책 제목 레퍼런스들을 적어보기도 했다. 우리 둘 다 공통적으로 좋아했던 책 제목 레퍼런스를 옮겨 본다. 명사 형으로 딱 떨어지는 제목보다 문장 형으로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을 선호했고, 대조 또는 상응하는 문장 구조 또는 중의적인 단어가 매력 있게 느껴졌다.
들키고 싶은 남미 일기 / 김다영
90년생이 온다 / 임홍택
말하기를 말하기 / 김하나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다방면으로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았다. 세상에 멋진 건 이미 남들이 다 한 게 분명했다! 그래도 우리 나름 필사의 고민 끝에 탄생한 유력 후보들을 소개한다.
회사 다니기 딱 좋은 나이, 회사 안 다니기 딱 좋은 나이
회사를 다니기에, 또는 안 다니기에 좋은 나이가 어딨겠는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각자의 선택에 따른 것이지, 나이에 따라서, 사회의 시선에 따라서 정해지는 건 없다! 옳고 그른 건 없다!라는 생각을 담을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각자의 1인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동생도,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나도 각자의 삶을 책임지는 1인분의 역할을 고군분투하며 해내고 있다는 뜻을 담았다. 우리의 1인분이 구현되는 모양은 다르지만 모두 똑같으면 재미없잖아요?
출근하는 여자, 출근하지 않는 여자
우리 둘 다 일합니다.
일하는 방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바탕으로 탄생한 제목 두 개다. 누구는 출근하고 누구는 출근하지 않더라도, 누구는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누구는 일한 만큼 받더라도 우리 둘 다 일하고 있다는 의미다.
퇴근은 내가 할게, 출근은 누가 할래?
유명한 인터넷 밈(짤)을 바탕으로 따온 제목인데, 듣자마자 동생도, 나도 빵 터졌다.
순풍산부인과를 통해 레전드 짤을 남긴 박미선 님, '00은 내가 할게, 00은 누가 할래?'라는 대사에서 수많은 2차 창작물이 생겨났다.
직장인이든 프리랜서든 퇴근이 고프고 출근이 어려운 마음은 같았나 보다. 우리 글의 성격에 맞게 유쾌한 느낌도 들고, 타깃 독자들이 모두 친숙할만한 인터넷 밈을 바탕으로 한지라 듣자마자 맘에 들었다. 결국 이 걸로 확정하기로 하고, 의미를 좀 더 부연 설명할 수 있도록 부제목을 같이 달기로 했다. 결국 최종 제목은 바로 이거다
퇴근은 내가 할게, 출근은 누가 할래?
: 출근이 힘든 직장인 언니와 퇴근이 어려운 프리랜서 동생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
이후에도 '2. 목차 확정하기 3. 표지 일러스트 정하기와 4. 홍보 계획 짜기 등' 다양한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는 다음 글을 통해 적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