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과 비효율
가도 가도 초원이 펼쳐진다. 도로 위에 우리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체? 그게 뭐죠? 몽골의 초원엔 그런 게 없답니다~
가끔 차가 덜컹하고 멈추거나 느려지는 이유는 소와 말과 염소의 대이동 때문. 소들은 자기가 이 드넓은 초원의 주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 느릿느릿 한가롭게 길을 건너고, 한낱 차 안의 미물인 우리는 그걸 지켜본다. 말도 안 되게 드넓고, 보이는 것은 초록뿐인 곳, 몽골이다 몽골
윈도의 대표적 배경화면이 초록인 이유를 알겠다. 초록만큼 사람의 맘을 편하게 해주는 색이 없다. 푸근하며 평화로운 생명의 색.
초록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면, 바다라고 해서 전부 파랑이 아닌 것처럼 초록도 다 같은 초록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햇볕이 쨍하게 드는 곳은 밝은 연두색, 커다란 구름의 그림자가 진 곳은 짙은 초록색. 짙은 초록이 구름의 모양대로 커다랗게 얼룩져있는 걸 보면, 그 안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 같다. 바다로 다이빙하듯. 사람을 빨아들일 듯 짙고 파란 블루홀은 아니지만 그만큼 사람을 매혹시키는 그린홀.
도시의 효율과 초원의 비효율?
내가 매일 출근하는 서울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평지라고는 고작 네모나게 좁은 옥상일 뿐이라 이 드넓음이 더 매력적이다. 도시는 모든 것을 효율의 논리로 재단한다.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의 성과를, 가격 대비해 만족스러운 성능을. 무시무시한 땅값을 가진 도시니 공간에도 효율성은 최대의 덕목이다. 사람들은 지친 몸을 뉘일 8평짜리 자취방에서도 한톨의 공간도 낭비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몽골은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분명 엄청나게 비효율적이다. 이 어마어마한 땅은 아무렇게도 쓰이지 않고 그저 염소가 풀을 뜯고 여행객들이 사색에 잠길 수 있게 거기에 그냥 존재한다. 내가 자라온 나라에서는 누려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공간의 낭비, 그 비효율이 경이로웠다.
좁은 땅에서 자란 내게 이 거대한 공간은 회사와 아파트로, 극장과 유원지로 꽉꽉 채워내야 할 무언가로 보였지만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란들에게 이 평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평원일 것이다. 굳이 채워낼 것도, 욕심낼 것도 없는 그저 자연의 상태.
비효율은 어떤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판단된다. 경제학자의 눈에는 이 초원이 광활한 자원으로 보일 것이고 염소들의 눈에는 그저 나고 자란 나의 집일 뿐이다. 평원을 보고 덩달아 넓어지는 마음과 시원한 눈, 평화로운 한 때, 이 순간 어떤 게 효율이고 무엇이 비효율이란 말인가.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서 인간의 논리로 자연을 재단하려는 오만을 버리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