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울림, 비움과 채움의 변증법

by 바나나 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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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람의 관계는 마치 그릇과 물의 관계와 같다. 그릇이 물을 담듯 사람은 말을 품고, 물이 그릇의 형태를 따르듯 말은 사람의 품성을 드러낸다. '말이 품은 사람, 사람이 품은 말'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상호적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규정하고, 동시에 규정된다. 이는 동양 철학의 핵심 개념인 음양(陰陽)의 상보적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된다(大器晩成)"라고 했다. 큰 그릇이 되려면 먼저 자신을 비워야 한다. 비움은 곧 겸허함의 다른 이름이다. 자신을 비워야 타인의 말을 온전히 담을 수 있고, 타인의 말을 담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말이 깊이를 얻는다. 자신을 가득 채운 사람의 말은 이미 넘쳐흐르기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그래서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된 앎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했다. 이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비움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은 말년에 제자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남겼다고 한다.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실수가 생기고, 글을 많이 쓰면 반드시 허물이 생긴다(多言必有過, 多文必有累)." 그는 평생 언행을 삼가며 자신을 비우는 수행을 했다. 그럼에도 그의 말과 글이 오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감을 얻는 것은, 그 비움 속에 깊은 사람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말은 그저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존재 방식이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지만,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말과 사람의 불가분의 관계를 인식해왔다. 『논어』에서 공자는 "사람됨은 말에서 나타난다(人由言顯)"고 했다. 말이 사람을 드러내고, 동시에 사람이 말을 규정한다. 옷이 사람을 만들지 않듯이, 화려한 수사만으로는 참된 품격을 갖출 수 없다. 말의 품격은 사람의 품격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말과 사람의 관계는 서로를 변화시키는 순환적 구조를 갖는다. 『중용』에서는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人能弘道, 非道弘人)"라고 했지만, 말의 세계에서는 조금 다르다.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인식의 틀을 형성한다. 장자는 "말은 마음을 담는 통로"라고 했는데, 이는 마음에서 말로 향하는 일방통행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은 다시 마음으로 돌아와 마음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말과 사람'의 변증법적 관계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말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질 것이다.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 수양의 과정이자 관계의 거울이 된다. 그래서 공자는 "말을 삼가고 행동을 신중히 하라(謹言慎行)"고 가르쳤다. 이는 단순히 말실수를 줄이라는 처세술이 아니라, 말을 통해 자신을 갈고닦으라는 수행법이다.


『대학』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정심(正心)에 있다. 마음이 바르면 말이 바르고, 말이 바르면 행동이 바르다. 이처럼 말은 마음의 창이자 행동의 씨앗이다. 말이 사람을 담아내고, 사람이 말을 품는 순환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한다.


결국 '말이 품은 사람, 사람이 품은 말'이란 비움과 채움의 변증법이다. 자신을 비워야 타인의 말을 담고, 타인의 말을 담아야 자신의 말이 깊어진다. 이 순환의 과정에서 말과 사람은 서로를 다듬고 높여간다. 우리의 말이 품격을 갖추려면, 먼저 그것을 품는 사람이 깊이를 가져야 한다. 마치 맑은 연못이 달을 온전히 비추듯, 고요한 마음만이 세상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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