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東晉) 시대, 왕희지(王羲之)는 산동성 소재 난정(蘭亭)에 모인 문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술에 취해 흥겨운 마음으로 쓴 서문 '난정서(蘭亭序)'는 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서예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당 태종 이세민은 이 글씨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죽을 때 자신의 무덤에 함께 묻히게 했다고 한다.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글자에 담긴 향기, 그 문자향(文字香)을 사랑한 것이다.
동양에서 문자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하나의 예술이자 철학이었다. 한자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그림이며, 상형(象形)·지사(指事)·회의(會意)·형성(形聲)의 원리가 담긴 소우주다. '木(목)'자는 나무의 형상을, '上(상)'자는 위쪽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明(명)'자는 해와 달이 밝음을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자를 통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진다.
조선 후기의 학자 추사 김정희(金正喜)는 제주도 유배 생활 중에 '세한도(歲寒圖)'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에는 소나무, 잣나무와 함께 그의 특유의 글씨가 어우러져 있다.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는 『논어』의 한 구절이다. 그림과 글자가 하나로 어우러진 이 작품에서 우리는 글자가 단순한 기호가 아닌 정신의 향기를 머금고 있음을 본다.
당나라의 문인 유종원(柳宗元)은 "좋은 글자는 향기가 있어 세월이 지나도 향내가 사라지지 않는다(善字有香氣 歲久不滅)"고 했다. 실제로 옛 서책을 펼치면 묵향(墨香)이 코끝을 스친다. 이는 단순한 먹의 냄새가 아니라 시간과 지혜가 켜켜이 쌓인 향기다. 고서(古書)를 좋아하는 이들이 종종 책을 코에 가까이 대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이유다.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문자의 정확한 사용과 이해를 강조했다. 그에게 문자는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사상과 철학의 그릇이었다. "글자 하나가 틀리면 뜻이 천리만큼 빗나간다(一字之差 意謬千里)" 정약용의 이 경구는 문자가 가진 엄중함과 정밀함을 잘 보여준다.
동양의 서예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글자를 예쁘게 쓰는 것이 아니다. 서예가 추구하는 가치는 '기운생동(氣韻生動)'과 '신운(神韻)'이다. 붓을 든 사람의 기(氣)와 정신(神)이 글자에 담겨 살아 움직인다는 뜻이다. 북송의 문인 소식(蘇軾)은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다(書者心畵也)"라고 했다. 한 사람의 인품과 수양, 내면이 글자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한자의 아름다움은 그 조형성에만 있지 않다. 한자의 구성 원리에는 동양철학의 사유방식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인(仁)'자는 '사람 인(人)'과 '둘 이(二)'가 결합된 글자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화(和)'자는 '곡식 화(禾)'와 '입 구(口)'의 결합으로, 함께 음식을 나누는 조화로움을 의미한다. 한자 하나에도 우주의 이치가 담겨 있다.
문인화(文人畵)의 전통은 글자와 그림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준다. 그림 속에 시를 적고, 인장(印章)을 찍는 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각과 언어, 형상과 의미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남송의 화가 마원(馬遠)의 그림에는 흔히 여백이 많은데, 이 공간에 시를 적어 넣음으로써 그림이 말하지 않는 것을 글자가 이야기하게 한다.
글자의 향기는 시간을 초월한다. 2천 년 전 한나라 때 쓰인 예서(隸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름답다. 당나라 안진경의 해서(楷書)나 송나라 소동파의 행서(行書)는 시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준다. 이는 글자가 단순한 약속된 기호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심오한 표현임을 보여준다.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점점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자판을 두드리고 음성으로 명령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손글씨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손글씨에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적인 온기와 개성이 있다. 한 획 한 획에 담긴 사람의 호흡과 기운, 그 순간의 감정까지도 전해진다.
우리는 종종 오래된 편지를 발견하고 감동한다. 그것은 단지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그 글자에 담긴 그 사람의 향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적은 그 사람의 DNA처럼 유일무이한 존재의 흔적이다. 추사의 글씨를 보며 그의 고독과 기개를, 다산의 글씨를 보며 그의 학문적 정밀함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좋은 글자는 향기가 있어 천 년이 지나도 향기롭다(好字有香氣 千載尙芬芳)"고 노래했다.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도 문자향(文字香)의 가치는 변함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소중해졌다. 손글씨 한 장, 정성스레 쓴 편지 한 통이 주는 감동은 수백 개의 이모티콘이나 텍스트 메시지로도 대체할 수 없다.
문자향을 느끼는 것은 글자와 대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간 정신의 교감이다. 난정서의 필체에서 왕희지의 호방함을, 세한도의 글씨에서 추사의 외로움을, 고대 갑골문의 획에서 선조들의 사유방식을 읽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문자향의 매력이자 글자가 품은 사람, 사람이 품은 글자의 아름다운 대화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