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위나라 조식(曹植)은 형 조비(曹丕)의 미움을 받아 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다. 하루는 형이 그를 궁으로 불러 명했다.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짓지 못하면 목숨을 버려라." 조식은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일곱 걸음을 채우기도 전에 이런 시를 읊었다.
"콩을 삶아 콩국을 만드니(煮豆燃豆萁) 콩은 가마에서 울고 있네(豆在釜中泣)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건만(本是同根生) 어찌 그리 급하게 서로를 괴롭히는가(相煎何太急)"
형을 원망하는 대신, 콩과 콩깍지의 비유를 통해 형제간의 정을 일깨웠다. 이 시를 들은 조비는 칼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언어의 힘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다.
공자는 『논어』에서 '서(恕)'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이는 역지사지의 기본 원리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자(程子)는 "타인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人心即我心)"이라고 했다.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여기는 것, 그것이 진정한 역지사지다.
조선 광해군 시절, 대북파와 소북파의 갈등이 극심할 때였다. 실학자 김육(金堉)은 당쟁에 휘말려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는 떠나기 전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역지즉통(易地則通)이라, 입장을 바꾸어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으니, 나의 적을 미워하기 전에 그의 처지를 생각해 보라."
훗날 인조반정으로 그가 복권되었을 때, 김육은 자신을 미워했던 이들에게 복수하는 대신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역지사지의 언어는 분노를 넘어서는 지혜를 가르친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다고 말했다. 타인의 고통에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마음이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 사람이 즉시 구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는 본능이 있다. 역지사지의 언어는 이 본성을 일깨우는 과정이다.
제나라 경공(景公)이 사냥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신하 안자(晏子)가 물었다.
"사냥을 즐기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경공이 대답했다. "짐승을 잡는 즐거움이지."
안자가 다시 물었다. "만약 짐승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요? '우리는 왕을 해친 적도 없는데, 왕은 왜 우리를 죽이려 하는가?'라고 하지 않을까요?"
경공은 잠시 생각하더니 사냥을 중단했다. 이처럼 역지사지의 언어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조선 정조는 신하들과의 소통에서 역지사지의 원칙을 적용했다고 전해진다. 한번은 노론 출신 신하가 남인 출신 정약용을 비판하자, 정조가 말했다.
"그대가 정약용의 입장이라면, 그대는 무엇을 말하였겠는가? 생각해 보게."
이 한마디가 신하들 사이의 당파적 갈등을 누그러뜨렸다고 한다. 역지사지의 언어는 분열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역지사지의 언어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둘째, 판단보다 이해를 먼저 한다.
셋째, 책망보다 공감의 언어를 사용한다.
넷째, 결론을 내리기 전에 충분히 상대의 맥락을 살핀다.
북송의 사상가 장재(張載)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나면 천하의 이치가 통한다(異則通矣)"고 했다. 역지사지의 언어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 차이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발견하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 역지사지의 언어는 더욱 중요해졌다. 다양한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SNS의 발달로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쉽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줄어든 것 같다.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는 역지사지의 현대적 표현이다. 우리가 깊이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입장에서도 공통된 인간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지사지의 언어는 단순한 대화 기술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철학이다. 조선의 유학자 최한기는 "천하의 일에 어려운 것이 둘 있으니, 하나는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관점 안에 갇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소통은 그 울타리를 넘어설 때 시작된다. 역지사지의 언어는 그 울타리를 넘는 지혜의 사다리다. 공자가 말했듯이,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고,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면 남도 달성하게 하라(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이것이 바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언어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가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