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녀의 대화가 오갔다. "요즘 뭐 하고 지내니?" "학원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다가 버즈 타임에 집에 와요." "버즈 타임? 그게 뭐지?" "아, 버스 타임이요. 오타였어요." "아니, 버스 타임은 또 뭐냐?" 할아버지는 버스 시간표를 떠올렸지만, 그게 아니었다. 손녀가 설명했다. "부모님이 제 버스 앱으로 위치 확인하는 시간이요. 친구들끼리 그렇게 부르거든요."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단어를 두고도 전혀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순간이다. 언어는 같은데 의미는 다른, 세대 간 소통의 묘미와 어려움이 공존하는 장면이다.
세대 간 언어 차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양의 전통적 관점에서 이는 '효(孝)'의 덕목과 연결되었다. 『효경(孝經)』에는 "아버지가 산에서 나무를 해올 때 아들은 도끼를 들고 따라간다"는 구절이 있다. 이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기성세대의 언어와 경험을 젊은 세대가 배우고 이어받는 과정을 상징한다. 공자는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溫故知新)"고 했다. 전통적으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방향이 역전되는 경우도 많다.
조선 시대에도 세대 간 언어 차이와 갈등은 존재했다. 성리학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젊은 신진 사대부들은 새로운 학문의 용어와 개념을 적극 수용한 반면, 기성 관료들은 기존 방식을 고수했다. 1519년의 기묘사화는 이런 세대 간 철학적, 언어적 간극이 폭발한 비극적 사례였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세계관과 가치관을 담는 그릇이기에, 세대 간 언어 차이는 종종 깊은 갈등으로 이어졌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신조어는 세대 간 언어 격차의 가장 가시적인 사례다. "갑분싸", "인싸", "저쩔티", "좋댓구알"같은 표현들은 MZ세대에게는 일상적이지만, 기성세대에게는 낯선 외국어와 다름없다. 젊은 세대의 신조어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그들만의 경험과 감성을 담은 문화적 코드다. 기성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젊은 세대는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연대감을 확인한다.
어떻게 이런 세대 간 언어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첫째, 사회적 경험의 차이다. 각 세대는 서로 다른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경험하며 성장한다. 예를 들어 민주화, IMF 외환위기, 금융위기와 같은 경험은 특정 세대의 언어와 사고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둘째, 가치관의 변화다.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권위적 문화에서 수평적 문화로의 변화는 언어 사용에도 반영된다. 셋째, 가장 중요하게는 기술의 발전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세대는 온라인 환경에 최적화된 새로운 언어 코드를 발전시켜왔다.
기술 발전에 따른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편지에서 전화로, 이메일에서 메신저로, 텍스트에서 이모티콘과 영상으로 소통 수단이 변화하면서, 각 세대는 서로 다른 '모국어'를 갖게 되었다. 70대 노인에게 손글씨로 쓴 편지가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이라면, 10대 청소년에게는 짧은 동영상이나 이미지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더 편하다. 이런 매체의 차이는 단순한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와 표현 방식 자체의 차이를 만든다.
존칭어 사용의 변화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한국어의 복잡한 존댓말 체계는 세대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고 사용된다. 기성세대에게 존댓말은 당연한 예의였지만,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때로 거리감을 주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SNS에서 청와대가 '국민 여러분~'이라는 공식적 말투 대신 '국민님들 안녕하세요'라는 친근한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언어적 권위와 위계가 수평적 관계로 재편되는 과정이다.
세대 간 언어 차이는 소통의 단절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각 세대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 감정적 단절과 상호 불신이 생길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말을 함부로 한다"거나 "어른들은 꼰대같다"는 식의 상호 비난은 이런 단절의 표현이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세대 간 소통 부재로 인한 갈등이다. 젠더, 주택, 일자리 문제에서 세대 간 인식 차이는 서로 다른 언어 세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세대 간 언어 차이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언어의 변화는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젊은 세대의 언어적 창의성은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고, 기성세대의 언어적 안정성은 소통의 기반을 제공한다. 주자(朱子)는 "변화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도(道)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변화하면서도 본질적 소통 기능은 유지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세대 간 소통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째, 상호 이해의 의지다. 각 세대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신조어를 무조건 '잘못된 언어'로 비판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의 언어가 담고 있는 역사적 맥락과 지혜에 귀 기울일 때 더 풍부한 언어 세계를 얻을 수 있다.
둘째, '통역'의 역할을 하는 중간 세대의 중요성이다. 각 세대 사이에서 두 언어를 모두 이해하고 '번역'할 수 있는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통 사회에서는 중매인이 서로 다른 가문 간의 소통을 도왔듯이, 현대 사회에서도 세대 간 소통을 돕는 '문화적 중개자'가 필요하다. 특히 40-50대는 디지털 이전 세대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공통의 경험과 대화 공간이 중요하다. 세대가 함께 모여 대화할 수 있는 물리적, 문화적 공간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가족 식사'나 '명절 모임'이 이런 역할을 했다면, 현대에는 새로운 형태의 세대 간 만남의 장이 필요하다.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 콘텐츠, 공동의 사회적 목표를 위한 활동 등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넷째, '경청'의 자세다. 진정한 소통은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했다. 상대 세대의 언어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 자체가 소통의 시작이다. 말에는 그 사람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담겨 있다. 다른 세대의 말에 귀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자신과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창을 얻는다.
디지털 시대는 역설적으로 세대 간 언어 교류의 새로운 가능성도 제공한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카카오톡을 배워 소통하고, 젊은이들이 유튜브에서 전통적 지혜에 관심을 갖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매체의 변화가 세대 간 소통의 새로운 통로를 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이 세대 간 언어 격차를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격차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도 있다.
세대 간 언어 문제는 결국 '차이'와 '공통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이다. 각 세대의 고유한 언어적 특성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로서 소통할 수 있는 공유 언어를 발전시켜야 한다. 퇴계 이황은 "화이부동(和而不同)", 즉 '조화로우면서도 같지 않음'을 이상적인 관계로 보았다. 세대 간 언어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조화롭게 공존하는 언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결국 세대 간 언어의 문제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존중과 이해의 문제다. 옛것과 새것, 전통과 혁신, 안정과 변화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이다. 시인 윤동주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했다. 사라져가는 옛 언어에 대한 존중과, 새롭게 태어나는 언어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함께할 때, 세대를 초월한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