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알면 말도 빛난다
조선 영조 때의 일이다.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경복궁 후원을 거닐고 있었다. 영조는 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홍봉한이 이를 눈치채고 알맞은 순간을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다가갔다.
"전하, 오늘 후원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영조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조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홍봉한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정사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영조는 기분이 한결 나아진 상태에서 홍봉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일화는 『영조실록』에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조선 후기의 문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말의 타이밍’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로 전해진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임금의 마음 상태를 잘 살피고 알맞은 때를 골라 의견을 전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의 타이밍이다. 알맞은 때에, 알맞은 방식으로 말하는 지혜.
"때를 알면 말도 빛난다."
이 또한, 처세술이 아닌 깊은 소통의 비결을 담은 말로 보여진다. 아무리 좋은 말도 때를 놓치면 그 효과는 반감되고, 때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반면, 알맞은 타이밍에 건네는 한 마디는 그 어떤 웅변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타이밍의 중요성은 동서양의 고전에서 두루 강조된다. 동양의 여러 고전에서는 알맞은 때(時)의 중요성을, 서양에서도 고대 그리스인들은 '카이로스(kairos)'라는 개념을 중시했다. 카이로스는 '알맞은 순간'을 뜻하는 말로, 아무리 좋은 내용도 알맞은 때에 전해지지 않으면 그 효과가 반감된다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안영(晏嬰)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말의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데, 제 경공(齊景公)은 사치를 좋아하는 군주였다고 한다. 신하들은 이를 걱정했지만, 누구도 감히 직언하지 못했다. 안영은 경공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알맞은 때를 기다렸다.
『사기(史記)』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따르면, 어느 날 경공이 사냥에서 돌아와 기분이 좋을 때 안영이 다가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경공이 사냥의 즐거움을 이야기하자, 안영은 먼저 그 즐거움에 공감한 후 자연스레 백성들의 어려움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경공은 기분이 좋은 상태였기에 이 충고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게 된다.
"오늘 사냥은 어떠셨습니까?"
- "매우 좋았소. 짐승도 많이 잡고 경치도 훌륭했소."
"그렇다면 백성들의 삶도 살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사냥터의 짐승보다 백성들의 삶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안영의 지혜는 '시중(時中)'의 개념을 잘 보여준다. 시중은 『중용』에서 "군자가 중용을 이룸은 때에 맞게 하기 때문이다[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라고 표현된 개념이다. 중간을 취하자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때에 맞는 알맞음을 찾자는 것이다.
말의 타이밍은 단순히 '언제' 말하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도 포함된다. 전통적으로 유교 사상에서는 말과 행동의 알맞음을 매우 중시했다. 말은 때에 맞게, 행동은 의에 맞게 해야 한다는 관점이 강조되었다.
『장자』의 「인간세(人間世)」편에는 이런 우화가 있다.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가 위나라에 가서 군주를 바로잡고 싶다고 했을 때, 공자는 그에게 "네가 아직 그때를 알지 못한다(汝未得其道)"고 말했다. 공자는 안회에게 상대의 마음 상태를 읽고, 그에 맞는 접근법을 찾으라고 조언했는데. 결국 이것이 바로 말의 타이밍을 아는 지혜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마음의 열림'이 설득과 소통에 있어 핵심 요소로 꼽힌다.
‘심리적 개방성(psychological openness)’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심리적으로 수용적인 상태일 때 새로운 정보나 관점을 더 잘 받아들인다는 이론인데, 칼 로저스(Carl Rogers)의 인본주의 심리학에서도 강조된 바 있다. 반대로 방어적이거나 스트레스 상태일 때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거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결국 말의 타이밍이란, 바로 이 마음이 열리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의 이치를 살피며 소통의 지혜를 배웠다. 말의 알맞음과 타이밍에 대해 여러 글을 남겼는데,
"말은 활과 같고, 때는 화살과 같다. 활을 당기는 힘이 적절하고 화살의 방향이 정확해야 과녁을 맞힐 수 있듯, 말의 내용이 적절하고 그 타이밍이 정확해야 상대의 마음에 닿는다."
마치 활을 당길 때 알맞은 힘과 방향이 필요하듯,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내용과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비유적 표현들이 글에 남아있다. 이런 비유는 말의 내용과 타이밍이 모두 중요함을 보여준다. 아무리 좋은 말도 잘못된 때에 전하면 그 효과가 반감되고, 때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일상 대화에서도 타이밍은 결정적 역할을 한다.
부부 사이 대화를 생각해 보자. 배우자가 피곤하게 퇴근한 직후에 민감한 주제를 꺼내는 것과, 주말 아침 여유로운 시간에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직장에서도 상사가 바쁘게 회의를 준비하는 중에 승진 이야기를 꺼내는 것과, 편안한 점심 자리에서 같은 주제를 언급하는 것은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국제 외교에서도 타이밍과 상황의 중요성은 마찬가지다. 고인이 된 아베 전 일본 총리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자주 골프를 쳤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베는 트럼프가 골프를 좋아한다는 점을 파악하고, 공식 회담이나 딱딱한 사무실 대신 편안한 골프장에서 대화를 나눔으로써 중요한 외교적 사안들을 더 유연하게 풀어나갔다. 트럼프의 기분이 좋고 마음이 열려 있을 때, 민감한 무역 문제나 안보 협력과 같은 주제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의 타이밍과 상황을 읽는 지혜가 국제 관계에서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말의 타이밍을 익히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상대의 상태와 감정에 민감해져야 한다.
상대가 피곤한지, 기분이 좋은지, 바쁜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표정이나 행동을 관찰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짜 공감 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둘째, 기다림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
당장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고, 알맞은 때를 기다리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우리 선조들은 말의 알맞은 타이밍을 과일이 익는 과정에 비유하기도 했다. 너무 일찍 따면 신맛이 나고, 너무 늦게 따면 썩어버린다는 것이다.
셋째, 상황과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효과는 크게 달라진다.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말과 사적인 대화에서의 말, 공식적인 회의에서의 발언과 비공식적인 대화에서의 말은 각각 다른 타이밍과 방식이 필요하다.
넷째,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화가 났을 때, 흥분했을 때, 불안할 때는 말의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고, 필요하다면 말을 잠시 미루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음이 고요할 때 더 분명한 판단과 소통이 가능하다. 비단 자신의 마음뿐 아니라 상대의 마음 상태에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상대의 마음이 열려 있을 때, 그 말은 더 깊이 스며들 수 있다.
말의 타이밍을 익히는 것은 평생의 숙제다.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상황을 읽는 지혜를 필요로 한다. 안영이 제 경공의 마음 상태를 읽었듯이, 우리도 상대의 마음과 상황을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
때를 알면 말도 빛난다. 알맞은 때에 건네는 한 마디는 천 마디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그것이 바로 말의 타이밍이 주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