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늘 그렇게 불쑥 찾아온다. 메시지 하나로, 전화 한 통으로, 뉴스 속 익명의 숫자로. 남편의 친구 영민씨가 죽었다는 소식이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반년도 더 지났다. 남편과 사이가 나빠 필요한 일 외에는 대화를 피하던 그때, 저녁을 먹고 안방에서 혼자 쉬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놀란 얼굴로 폰을 들고 뛰쳐나왔다.
- "여보, 영민이가 죽었대."
- "뭐라고?"
- "여기 봐봐, 카톡으로 영민이한테서 부고장 왔어. 신촌 세브란스라는데?"
의심이 먼저였다. 그것이 첫 반응이었다. 누군가의 죽음보다 사기를 의심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 "그거 누르지 마봐. 요즘 부고장 보이스피싱 많대. 클릭하면 해킹당하고 돈 나가는 거야."
- "전화해볼까?"
- "아니 또 진짜면 어떡해. 나도 모르겠다."
남편은 '거짓말인가?' 하면서 서둘러 병원 장례식장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진실을 마주했다. 영민의 이름이 분명히 거기 있었다.
우리가 알던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첫 걸음은 언제나 디지털 정보, 인쇄된 이름, 공식 발표 같은 것들이다. 마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조차 공식적으로 증명되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처럼.
급하게 장례식장에 남편을 보내고 나도 멍해졌다.
영민씨는 남편의 직장에 예전에 다녔던 후배였는데, 너무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맞벌이하는 부인을 쉬게 해준다며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주말이면 늘 딸아이를 데리고 둘이서만 나들이를 다녔다. 한 여름이고 겨울이고 덥다고 짜증낸 적도, 춥다고 서두른 적도 없다.
집 문제로 우리 사정이 복잡할 때도 기꺼이 어려운 자리 함께 가주었고, 무슨 날이 아니라도 종종 인사하고 좋은 것은 항상 나누던 그.
남편이 돌아왔다.
- "빈소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있어. 내일 다시 가봐야될 거 같아."
아직 40대 초반인데, 어찌 그리 되었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런내 마음을 알았는지 남편이 말을 이어간다.
- "차 사고가 크게 났대. 동생이랑 같이 부모님 댁에 가다가 둘 다... 잘못됐다네..."
남편이 뉴스 링크를 카톡으로 보냈다. 8시 뉴스에 나올 정도의 큰 차사고였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쓰리다. 그 선한 미소가 자꾸 떠오른다. 남은 아이 엄마와 아이가 어찌 지낼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자식을 한 번에 둘 잃은 부모님은 또 어떻고...
우리가 누군가를 잃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항상 그 사람의 선함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착했는지, 얼마나 다정했는지. 영민씨의 경우에는 그 선함이 내 기억 속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빛났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선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오늘 저녁 설겆이하는데 갑자기 영민씨 생각났다. 같이 먹었던 저녁 식사가 생생하다. 기억 속에서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 그의 웃음소리, 그의 손짓까지 모두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가 충분히 애도를 안 한 탓일까?
옛날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위해 삼 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 지금은 3일 장례식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애도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
내가 아직은 가까운 죽음을 경험하지 않아서인지 무엇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영민씨의 부재는 종종 예고 없이 찾아와 내 일상을 멈추게 만든다.
아! 이제 속으로 생각하지 말고 저녁에 정성껏 기도라도 해야겠다.
"영민씨. 부디 편안하시기를."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죽음의 이유를 찾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어쩌면 그 이유는 남겨진 자들이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의미 있게 살아가라는 무언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나게 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남긴 흔적들, 그 작은 친절과 따뜻함은 오래도록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살아있을 것이다. 영민씨가 그랬듯이.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오늘은 괜히 천국이 보고 싶었습니다. 궁금했어요.
AI가 그려준 천국 사진. 영민씨도 거기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