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지난 겨울 형님네와 함께한 여행은 유쾌했다. 모든 준비를 공평하게 나눠서 했고, 여행지에서 생기는 자잘한 비용들도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적당히 주고받았다. 형편이 넉넉한 형님이 자주 먼저 계산을 하면 나는 다음번엔 우리가 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회를 기다렸다. 때로는 그 기회를 놓치기도 했고, 내가 낸 금액이 형님이 쓴 것보다 적을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큰 돈도 아니었고, 나 역시 특별히 손해를 본 건 아니었으니까. 적당한 기념품을 사드리며 여행을 마무리했을 때, 나는 내 자신이 꽤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욕심을 많이 내려놓았고, 조금쯤 손해 보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어제 밤 꿈이 그 자부심에 균열을 냈다.
꿈속에서 친구가 용이 날아오르는 멋진 꿈을 꿨다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좋겠다'가 아니라 '돈을 주고라도 저 꿈을 사고 싶다'였다. 남의 꿈까지 욕심을 내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나는 적잖이 놀랐다. 무의식의 세계에서까지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꿈을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한다. 의식적으로 억압하거나 통제하려 했던 감정들이 꿈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연기를 펼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토록 내려놓았다고 믿었던 욕심은 사실 내려놓은 게 아니라 단지 지하실로 옮겨 둔 것에 불과했던 걸까.
여행에서의 나는 분명 의연했다. 형님이 계산을 먼저 하셔도 기꺼워했고, 내가 조금 덜 내게 되어도 감사해했다. 하지만 그 의연함의 바탕에는 '큰 돈이 아니라서', '내가 특별히 손해 본 건 아니라서'라는 조건들이 깔려 있었다. 진정한 욕심의 포기가 아니라 손해와 이익을 계산한 결과였던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지질학적 구조를 닮았다. 표면에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아래로는 여러 지층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의식적으로는 욕심을 내려놓았다고 여기지만,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갖고 싶어 하고, 더 얻고 싶어 하는 원시적인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꿈속에서조차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이 발동한 것은 그 증거였다.
욕심을 완전히 내려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행동을 절제하는 것을 넘어서 마음 깊숙한 곳의 갈망까지 다스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욕심의 표면만을 다룬 채 내면의 변화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안다. 욕심 내려놓기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의식적인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무의식의 영역까지 들여다보며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꿈이 들려준 진실 앞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겸허해진다. 욕심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고 질기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변화의 첫걸음을 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