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다는 건,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것

by 바나나 슈즈

오랜만에 대학시절 친구를 만났다. 친정 아빠가 전립선암 수술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수술 날짜가 되어 친정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터미널에서 내린다고 하기에 거기서 만났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서며 이런저런 추억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가 새삼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흘렀다.


벌써 20년이라니.


결혼식 때 가방지기 해준 게 엊그제 같은데. 앞으로의 20년도 이렇게 지나갈량이면 우리는 나이가 70이 된다. 새삼 나이 먹음에 공포가 느껴졌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지금 보면 참 많이도 변했다. 나잇살도 여기저기 붙어있고, 주름은 말해 뭣하랴. 한때 유행하던 GPT에게 지브리 스타일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면서 사진을 넣었더니 주름을 잔뜩 넣어서 그리더라. 젊어 보이는 걸로 고른 사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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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흰머리 때문에 더 이상 좋아하는 색으로는 염색을 할 수 없다고 하고, 결국 정년퇴직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그 대화들이 무겁게 다가왔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간다고 느껴진다. 열 살 아이에게 일 년은 인생의 십분의 일이지만, 오십 세에게 일 년은 오십분의 일에 불과하다. 비례적으로 계산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체감하는 순간은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다.


GPT가 그려준 나의 모습에서 주름을 발견했을 때의 당황함을 다시 떠올렸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픽셀과 알고리즘의 조합으로 나를 해석했을 뿐이었다. 젊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사진 속의 나는, 인공지능의 눈에는 이미 시간의 흔적이 역력한 중년이었다. 우리는 거울 속 자신보다 실제로는 더 늙어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마음속 자아상은 여전히 스무 살 어디쯤에 머물러 있다.


친구가 흰머리 때문에 좋아하는 색으로 염색할 수 없다고 말할 때, 나는 우리가 서서히 선택지를 잃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청춘이란 무한한 가능성의 시간이라고들 하지만, 실상은 그 가능성들이 하나씩 문을 닫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에릭 에릭슨이 말한 중년기의 특징이 바로 이것일 터였다. 생성감과 침체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시기.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전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동시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늦었다는 체념감이 교차한다.


하지만 정년퇴직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것은 단순한 노화에 대한 공포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의 유한함이 주는 절박함 같은 것이었다.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칠십이 된다는 계산이 무섭기보다는, 그 2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간절함으로 다가왔다.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센은 남은 시간이 제한적이라고 인식할 때 우리는 더욱 의미 있는 관계와 경험에 집중하게 된다고 했다. 그 말이 실감났다.


터미널로 돌아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가 나누었던 시간들을 생각했다. 스무 살 때의 우정과 오십 살 때의 우정은 질감이 다르다. 예전에는 미래에 대한 꿈과 불안을 공유했다면, 이제는 지나온 시간들의 무게와 앞으로 남은 시간의 소중함을 나눈다. 그것이 나이 드는 일의 슬픔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이다.


시간은 우리를 늙게 하지만, 동시에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가르쳐준다. 나잇살과 흰머리와 주름은 단순한 쇠퇴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증명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중간 지점에서 만난 깊은 우정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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