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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스플릿 Feb 20. 2024

왜 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올해도 승진은 물 건너간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든다. 이 사람은 나를 높게 평가하지만 나에게 더 큰 기회를 줄 생각은 없구나. 인자한 표정으로 함께 길을 개척하자고 했지만 결국에는 내 능력과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줄 생각은 없었다. 더 이상은 속지 않겠다.


40대 중반의 직장인이 겪는 오늘의 단편이다. 내일 당장 잘릴 것 같지는 않은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한다. 조직은 점차 젊어지고 임원들은 늙어간다. 그 중간에서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곧 내 자리를 빼줘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런 분위기가 슬슬 생성된다. 이 나라는 열심히 일할수록 회사에서의 입지를 곤란하게 만든다. 사장이 되거나 사장에게 아주 필요하지 않으면 내 자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수의 자영업자가 하루에도 수십만 건씩 폐업을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새롭게 시작하는 자영업자가 넘쳐난다. 평생 갈 것 같던 직장에서 너무 일찍 나온 탓이다. 직장인의 수명은 점차 짧아졌다. 아버지는 30년 넘게 한 직장에 다니다 명예퇴직을 했다. IMF만 없었어도 정년으로 퇴직하셨을 것이다. 그래도 환갑 가까이 일했으니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사정이 너무나 다르다 중소기업에서 50을 넘기기 쉽지 않다. 40대 후반이 되면 다들 비슷한 얘기를 한다. 이제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그러나 희망은 있다. 위기는 곧 기회니까. 이런저런 책을 살펴보다 남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자신의 삶을 찾으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비슷한 말들이 반복되는 또 하나의 그런 책이지만 지금 시점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무엇'을 할지 생각하지 전에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하란다. '왜' 보다 '무엇'을 먼저 찾으면 실패한다고 한다. 행간의 의미를 곱씹다가 아차 하는 순간을 경험했다. 인생이든 작업이든 왜 해야 하는 것인지가 먼저 정립되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 지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왜'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월급 마약은 그만큼 무섭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왜 그렇게 살고 싶었는지 완전히 잊은 지 오래다. 그래서 승진 누락을 맞이하는 것이 괴롭게 짜증 나지만은 않는다. 내가 사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으니 말이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그렇게 살고 싶은지 바닥을 다질 기회가 찾아왔다. 오히려 이번 기회가 고마울 따름이다. 


우연히 집어든 책은 늘 예상치 못한 현답을 준다.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리고 잊었던 인생의 한 구간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힘. 끌려다니지 않을 인생은 위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뭔가 실패하고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고개를 들고 세상을 넓게 보자. 책이 늘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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