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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Feb 02. 2021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

 

고통은 선물이다.


밥을 굶는 것도 아니다. 고강도의 육체적 노동을 하지도 않는다. 잠은 잘 만큼 자고, 대체로 건강한 편이다. 이런 내게 어떤 신체적 고통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저 첫 문장은 아직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첫 문장이 위와 같은 이유는, 저자의 고통에 대한 사유에 조금이라도 닿아보기 위함이다.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는 고통에 대해 고통스럽지 않게 말하고 있다. 저자는 살아낸 세월만큼이나 인생의 수많은 변곡점을 지났다. 주변이들의 죽음도 꽤 많이 목격하고 경험했다. 그리고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했다. 남편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하기까지 과정을 1장에서 그리고 있으며, 그 이후의 상황을 2장에서 말하고 있다.



남편에게 신장을 기증하는 과정, 일상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꽤 사실적으로 기술함과 동시에 문학적인 필체가 돋보인다. 단순히 '간병기'라고 표현하기엔 이 책을 표현하기 부족하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에세이'도 아니다. 어느 부부의 이식 경험을 생생하게 솔직하게 그린 기록이다. 저자 자신의 자서전적 성격도 일부 가지고 있다.






쉽지 않은 길.

책을 읽으며 수없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과연 아내에게 신장을 떼어줄 수 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대답하기를 나 스스로 미루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포기하고는 수술실을 탈출하듯 뛰쳐나오는 기증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듣긴 했다. 의과대학 교수인 선배는 신장을 기증하겠다는 말을 듣고 좀 더 신중하라고, 자신은 기증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86쪽


수술을 앞두고도 저자는 두렵지 않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신장 이식을 통해 '우리 부부는 하나의 콩팥으로 서로의 아침과 저녁 안부를 묻는 진정한 일심동체가 된다'라고 말한다. 연륜인지 믿음인지 알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분명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


내가 가진 두 개 중 하나를 내어줌으로, 벼랑 끝에 떠밀린 성조(남편)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뭇 설레기까지 했다. (...) 나로 인해 행복했다고 웃음꽃 피우는 누군가가 있으면,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산 것이 아닐까. -78쪽


저자는 말한다.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뜨리지 않고, 달은 자신을 위해 어두운 길을 밝히지 않는다고. 자신만이 누리는 행복은 허망하다고. 다시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난 마지못해 대답했다. 쉽지 않다…. 쉽지 않다….



부부 사이 그리고 감정.

장기 기증자-수혜자 관계이면서 부부이기에, 저자는 남편과의 일화를 여럿 공개한다. 재벌가 남편 대신 평범한 회사원인 남편을 택한 이야기부터 남편에게 서운했던 이야기까지. 꽤 솔직하게 그리고 인간적으로.


결혼은 감정이나 본능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인격적이고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해야 한다. 사나이의 기백이 물씬했던 성조가 막상 남편이 되자 내 감정을 살펴주지 않아 이따금 서러웠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나의 서러움에만 매달릴 뿐이었다. -73쪽


나는 아내의 감정을 충분히 살피고 있는지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동시에, 내가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어 실수했던 경험들을 떠올렸다. '감정을 살피는 일'이 부부 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배웠다. 아래의 내용도 새롭게 다가왔다.


북극해 연안에 사는 이누이트는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아니, 놓아준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언제까지? 분노의 감정이 스르륵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아두고 돌아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감정을 그곳에 묻어두고 오는 것이다. -179쪽



내가 모르는 두 글자.

내가 모르는 세계였다. '이식'이라는 두 글자에는 정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단순히 '넘겨준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혈액검사와 교차반응 검사를 시작으로 기증자와 수혜자는 수많은 검사를 받아야 했으며, 장기 공여자의 순수성 평가를 거쳐야 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신장, 간장, 췌장, 심장, 폐와 골수, 각막 등을 말하는 장기 등의 기증과 적출 및 이식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 장기 등의 이식을 합법적으로 보호하고 (...) 법률에 따라 생체 신장 이식수술 시에는 반드시 이식 전에 장기 기증자의 순수성 평가를 거쳐야 하고,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KONOS)으로부터 장기 이식을 위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 -105쪽


여기서 다 나열하지도 못할 일련의 과정들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일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그동안 너무 쉽게 '이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닌지 반성도 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

성공적인 수술 그리고 해피엔딩. 이렇게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크고 작은 고통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문장들은 삶을 저버리지 않는다.


삶은 순간순간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순간과 순간이 연결될 때 의미가 발생한다. 그러니 모든 순간은 의미를 낳기 위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살면서 어느 한 순간도 의미의 연결망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의미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일관성 있게 조율하는 게 내가 생가하는 인생이다. -17쪽


오지 않은 행운에 들뜨지 않는 것처럼, 닥치지 않은 불행에 대해 불안해할 일도 아니다. 그러니 미래에 대한 근심을 섣불리 맘에 두지 않아야 하리라. 지금, 여기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그동안 성조의 투병을 지키며 익혀온 신조다. -163쪽


기적이었다. (...) 기적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몸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깊이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의 내면은 단단하고 아름다우며, 기적은 그 순수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때 얻어지는 열매일 것이다. -175쪽


앞으로 저자가 겪을 다른 고통들이 있을 테지만 걱정되진 않는다.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그녀만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민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응원하기로 했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 그들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무심코 던지는 위로의 말이 아픈 사람에게는 섣부른 연민이나 동정에 그칠 때가 종종 있다.* 그저 독자로서 그들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 충실할 뿐이다.


고통과 간병에 대한 책이면서 동시에 그 마저도 삶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제 와서 고통은 선물이라는 말이 조금, 아주 조금은 와 닿기도 한다. 왜냐하면 산다는 건 조용히 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 205쪽.

** 40쪽.



<이 글은 ‘파람북’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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