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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Oct 12. 2020

시처럼 살고 싶다

시 모음집 <시로 납치하다>를 읽고

좋은 시를 보면 시를 쓰고 싶어진다. 시어의 울림이 나를 감화시킨다. 어떤 깨달음이 나를 지금 이 시간에 머물게 한다. 시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지나친 나머지, 시인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꿈이라도 좋다.


주말에 책 <시로 납치하다>를 읽었다. 이 책은 여러 시를 모아 놓은 시 모음집이다. 서문을 대신한 글에서 이 책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부터 프랑스의 무명 시인, 아일랜드의 음유시인, 노르웨이의 농부 시인과 일본의 동시 작가가 당신을 유혹할 것이다. -책날개 중에서


전체적인 구성은 좋은 시를 소개하고 여기에 짧은 해설이 이어지는 식이다. 56편의 길고 짧은 시와 이보다 조금 더 길고 짧은 해설이 이어진다. 해설은 류시화 시인의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깊이 와 닿았던 몇 편의 시와 그 해설을 소개한다.




삶의 지혜는 파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파도타기를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파도를 멈추게 할 수 없다. 관계의 절정은 함께 힘을 합해 파도를 헤쳐 나가는 일이다. (…) 그렇다. 함께 노 저어 가는 두 사람의 리듬이 맞으면 인생은 노래가 된다. 두 사람은 삶이 선물하는 아름다움(별)을 경험하면서 고난(폭풍)을 극복해 나간다. (…) 삶의 여정이 어느 목적지에 이를지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에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파란 바다를 기억하리라. -13쪽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지 못하는 것보다 본래의 나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치명적이다. 나에게 필요한 일은 꽃봉오리에게 하듯이 "너는 사랑스러워!"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일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봉오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축복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다. -23쪽


놀랍지 않은가. 그해에 막 뉴햄프셔주의 계관시인으로 선정된 시인이 48세에 생이 끝나 가는 것을 절망하거나 비관하는 대신 삶의 사소한 행위들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 복숭아의 둥근 맛을 깨무는 것까지. 그것들이 곧 불가능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7쪽


그렇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얼마나 축복된 시간인가. 살아있다는 것은 큰 기회이다.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두 발로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다. 삶은 수천 가지 작은 기적들의 연속이다. 그것들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시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행간마다 '늦기 전에 깨달으라'라는 말이 숨어 있다. -27쪽


흔한 불평 중 하나는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도 현실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 창작은 환경이 갖춰진 후에야 하는 것이 아니다. 창작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한다. (…) 영감은 아마추어나 의지하는 것이다. 예술이든 일이든 영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죽어라고 하는 것이다. -30쪽


작가 지망생들이 미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싱클레어 루이스에게 강의를 요청했다. 루이스는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학생들 모두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루이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내 강의는 필요없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집에 가서 쓰고, 쓰고, 또 쓰라는 것밖에 없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강의실을 떠났다. -30쪽


(…)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변명을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 자신이 원하는 일을 '왜 할 수 없는지' 이유를 찾는 사람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는 사람이 있다. 거기서 인생이 나뉜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불행과 원하는 것을 하는 행복의 차이가. -31쪽


자발적인 추방자가 된다는 것은 집단 속에 매몰된 자아를 찾는 일이다. 다발에 묶이지 않고 한 송이 꽃으로 고고하게 서는 일이다. 사랑받기 위해서 타의적인 삶을 살지 않으며, 집단으로부터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다. 타인의 생각을 의식하는 것만큼 큰 감옥은 없다. 타인이 당신의 여행을 이해하리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어차피 당신과 같은 여행을 하지 않을 사람들이니까. -46쪽


D.H. 로렌스는 말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인간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만 자유롭다. 그 자유에 도달하는 길이 있다. 뛰어드는 것이다." -46쪽


그때 얼마나 많은 기쁜 순간들이 찾아오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 기쁨은 성취의 기쁨만이 아니라 나를 만난 기쁨이다. 안전한 거리를 두고 삶을 살아가는 것, 어중간한 경계인으로 인생 대부분을 보내는 것은 서서히 죽는 것과 같다. -46쪽


짧은 시이지만 이보다 더 절묘할 수 없다. 그는 삶의 헛된 희망에도 속지 않았지만 섣부른 절망에도 속지 않았다. 그렇다, '하루에 두 번' 틀림없이 밀물은 차오른다. 그때 우리 영혼은 비상하고, 의지가 솟고, 짧은 시간이지만 가슴 뛰는 일에 몰입한다. 평생을 무명 시인으로 보냈으나 레즈니코프의 시에는 분개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생계비를 버느라, 그리고 '밀물이 들어올 때'는 창작에 몰두하느라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폴 오스터가 지적했듯이, 레즈니코프에게 있어 시는 세계를 표현하는 하나의 양식이라기보다 세계 안에 존재하는 방법이었다. -55쪽


언어의 거장으로 불리는 릴케(1875~1926)가 우리는 동심원을 그리며 인생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확대되어 가며, 아마도 마지막 원은 어디선가 미완성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마지막까지 그 원을 넓히는 일이다. -93쪽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꽤 많은 시와 해설을 옮겼다. 그만큼 책장 끝을 접어놓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시 자체보다 류시화 시인의 해설이 더 좋았다. 메마른 감정을 달래고 싶은 사람, 어느 주말을 촉촉하게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류시화 시인은 말한다.


시는 우리가 몰랐던 진리들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것들을 알고 있었다. 다만 잊고 있었을 뿐이다.


당신도 나처럼 이 책에서, 뜻밖의 문구에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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