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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Oct 08. 2020

화장실에서 쉬는 사람들

남는 공간이 하나 생겼다. 실내 리모델링을 하면서 생긴 공간이었다. 사무실, 회의실, 휴게실, 탕비실 등으로 꽉 들어찬 이 곳에도 드디어 숨통이 트이나 싶었다. 건물이 아무리 커도 정작 필요한 공간은 부족해 답답하던 참이었다.


이 남는 공간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회의했다. 각 부서의 장들이 모여 각 부서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 공간'이 왜 해당 부서에 필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지 각자의 얘기를 하기 바빴다. 일방적인 주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회의 같지 않은 회의였다.


사실 '그 남는 공간'이 어느 특정 부서의 전용 공간이 되기엔 무리가 있는 거 같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했다. 우리 부서만을 위한 휴게실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내 이기심이 들킬까 두려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때 누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 청소 여사님들이… 화장실 한 켠에서 휴식하는 건… 아시나요?


우연히 들린 여자 화장실 구석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고 한다. 쥐인가 싶어 확인한 그곳에는 마대 걸레와 대형 락스통, 그리고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있었다고. 그리고 작은 비닐에 든 무언가를 드시는 청소 여사님이 그 사이에 있었다고.


얼굴이 화끈했다. 내가 타인의 삶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깨달았다. 내 삶만 챙기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나를 직면했다.


나는 청소 여사님들에게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고된 육체노동이 분명하다. 당연히 적당한 쉬는 시간과 장소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복도에서 마주친 여사님들께 급히 인사를 건네고 가던 길을 가기 바빴다. 여사님들이 남자 화장실로 들어오시면 황급히 바지 지퍼를 올리기 바빴다. 그리고 우리 부서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바빴다.






결국 '그 공간'은 여사님들의 휴게실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분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 타드리지 못했다. 부서가 바뀌고 여사님이 바뀌는 거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고백하자면, 청소 여사님들에게 어울릴 만한 무엇인가를 나 혼자 정해둔 것은 아닐까 싶다.


나의 사무실 복도와 화장실을 깨끗하게 해 주시는 분들. 그분들이 나의 이모라면? 나의 엄마라면? 아니, 나라면? 그랬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청소일이 내가 하는 일보다 하찮다는 생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분들의 임금이 올라간다면 이런 생각이 조금은 사라질까….


청소 여사님들의 쉼터가 생겨서 다행이다.


추워지는 날씨에 따뜻한 히터 바람 부족한 복도에서 일하는 여사님들의 몸을 덥혀줄 따뜻한 커피 한 잔. 다음주에 출근하면 그 커피 한 잔을 꼭 쥐어드릴 것이다.




*** <일간 서민재>의 다른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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