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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Oct 04. 2020

기준 미달입니다

윤은 나보다 키가 작은 친구였다. 반에서 나는 항상 3번, 윤은 1번이었다. 같은 반을 하는 몇 년 동안 2번 친구만 바뀔 뿐 우리 둘의 순서는 바뀌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같이 다녀서 그런지, 나와 윤은 키가 작다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대학에 들어가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는데, 어떤 일에 있어 키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여자 친구를 사귀는 일이었다. 키가 이성에게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전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을 때는 너무 늦었다. 아주 다행하게도 윤은 먼저 여자 친구를 만났고 여기에 용기를 얻은 나도 이성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군대를 가는 일이었다. 나와 윤은 조금 특별한 군 복무를 꿈꾸고 있었는데, 여기엔 최소 신장 기준이 있었다. 신체검사에서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키 작으면 못 했다.


물론 그 기준이 터무니없는 기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윤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드디어 신체검사 날이 되었다. 신체검사는 모 지역의 국군병원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기준 신장보다 무려 0.3cm를 초과한 우수한(?) 신장을 기록하였다. 키 이외의 조건은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난 웃으며 결과지를 담당자에게 제출했다.


나와 다른 조에 편성되어 있던 윤의 결과가 궁금했다. 잠시 윤을 기다렸다. 곧 로비에서 만난 윤의 얼굴은 창백했다. 윤이 결과표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기준 미달이야."


결과지엔 1cm 이상 미달된 윤의 키가 찍혀 있었다. 단시간에 키가 커진다는 말에 측정기 앞에서, 팔 굽혀 펴기도 해 보았단다. 아침부터 스트레칭도 해보고 양말 속에 깔창도 서너 개 깔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단다. 팬티 한 장만 입고 측정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다시 해달라고 해. 무조건 다시 해달라고 해."


나는 윤의 등의 떠밀었다. 다시 측정하면 또 모를 일이었다. 신장 측정을 담당하는 군인을 급히 찾았다. 그리고 간곡하게 부탁하여 둘은 지하로 다시 내려갔다.






다시 만난 윤의 얼굴은 아직 굳어있었다. 다행히 결과지엔 간신히 기준 신장을 초과한 신장 기록이 찍혀있었다. 나와 윤의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윤은 신장 측정기에 올라 까치발을 들었다고 한다. 1차 측정 때는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있어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2차에서 윤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오직 둘 뿐인 지하 측정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하는 윤의 얼굴에 약간의 흥분이 감돌았다. 그리고 윤은 말했다.


  "지하에 그 군인이랑 함께 내려갔잖아? 그런데 신장 계측기 앞에서, 그 일병이 고개를 돌리더라고."


지금도 만나면, 윤은 당시의 이야기를 종종 꺼낸다. 그때 자신에게 무조건 다시 하라고 말해주어서 고마웠다고. 그리고 그 일병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그를 만나면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고.


기준 미달이었지만 간신히 원하는 군생활을 하게 된 내 친구 윤. 윤은 당시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군생활 내내 잊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성실하게 임수 수행을 했다.


아마 알지 못했을 것이다. 기준 미달의 그 장교 후보생이 모든 동기들이 전역할때 군에 남아 있게 될 줄은. 누구보다 사명감을 갖고 나라 지키는 일에 매진할 줄은.


아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윤도, 나도, 그 때 그 일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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