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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Sep 27. 2020

필요할 때만 전화하는 사람

돈이 부족한 시절이 있었다.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해 손을 벌리던 시절이었다.


유일한 돈줄은 엄마였다. 전화 한 통이면 돈 삼십만원이 입금되었다. 돈 아껴 써라, 먼저 보내준 돈을 어디에다 썼냐, 엄마는 묻지 않았다.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 아들이 잘 지내는지만 물으셨다.


삼십만원. 2020년의 내게도 적지 않은 돈인데, 엄마는 항상 그 돈을 어디서 마련했을까 싶다.


용돈이 적었던 것도 아니지만, 밥도 기숙사에서 제공되었지만, 항상 돈이 부족했다. 술 사 먹고, 옷 사 입고, 가끔 전공책을 사 보면 돈이 바닥나 있었다. 그래도 돈 부족하단 생각 없이 대학을 다닌 건 부모님 덕분이었다. 학자금 대출도 없이, 용돈 걱정도 없이, 나의 20살을 열었다. 그게 모두 지금의 기반이 되었다.






그날도 엄마에게 전화한 날이었다. 바로 돈 얘기부터 꺼내기 미안해서 엄마의 안부부터 물었다. 엄마 잘 지내? 응 엄만 잘 지내, 넌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응 그럼. 술 조금만 먹고 다녀라. 응 엄마는 별일 없어? 그럼 별일 없지. 그럼 엄마 돈 좀 부쳐줘. 그래 알았다.


전화를 끊고 짧은 통화를 복기해보았다. 비슷한 패턴의 통화를 몇 번이고 반복했었지만, 그날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돈이 필요할 때만 엄마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엄마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항상 아들의 전화를 반겼다.


다음날, 통장엔 삼십만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내가 달래서 받은 돈이지만 함부로 쓸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에게 전화하는 습관이 생겼다. 돈이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전화를 했다. 별 다른 일이 없어도 전화를 했다. 거의 매일 전화를 했다. 지방으로 큰 아들을 대학 보내고 엄마가 종종 눈물지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즈음이기도 했다.


미안하지 않게 돈을 받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내가 엄마에게 삼십만원 정도 부쳐드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전화하지 않는다.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당신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부쳐드리고 싶지만, 그런 전화는 걸려오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도 엄마는 일을 한다. 내가 퇴근을 해도 엄마는 잔업 중이다.


아빠와 엄마는 종종 프로필 사진으로 나를 올려놓는다. 하지만 난 그들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적 없다. 내가 그들의 자랑스러운 아들일지 궁금하다. 내가 그들 삶의 이유일 거 같아 조심스럽다.


엄마의 흰머리가 눈에 선하다. 대중목욕탕에서 마주한 아빠의 등허리 주름이 생생하다. 그래도 아직 난 엄마밥을 얻어만 먹을 뿐 엄마에게 밥을 해주지 않는다. 정작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고, 또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저 난 검은 머리만 가득한, 물가에 내놓은 서른 다섯 아이일 뿐인데 말이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내가 얻은 직장과 지위와 재산과 모든 결과물도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종종 잊는다. 그들은 종종 내게 당연한 존재이므로. 언제까지 이 착각을 반복할지, 언제나 철이 들지 나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도 여전히,

이 글에 가장 먼저 라이킷을 눌러줄 그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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