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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Sep 27. 2020

삶에 누군가를 들이기 망설여진다

이젠 두렵다.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삶에 들이는 일 말이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할 걱정에 지레 겁부터 난다.




타인을 만나는 일은, 내게 그 자체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눈을 맞추고 온 신경을 집중해 상대를 바라본다. 상대가 하는 말을 최대한 집중해 듣고, 적당한 맞장구와 질문을 통해 대화를 이어나간다. 듣기만 할 수 없으니 나도 어떤 이야깃거리를 주어야 한다. 힘들다고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흐르도록 놓아둘 수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잘 지내고 있는지 철마다 안부를 묻는다. 안부 인사는 틀에 박히면 아니 되기에 평소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 관계는 지속하는 데 의미가 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관계 맺기'와 '관계 유지'로 나누어 본다면 난 후자가 더 버겁게 느껴진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 이런저런 이유로 매일 보게 되는 사람을 챙기는 건 비교적 쉽다. 그들에게 난 좋은 사람일 자신이 있다. 그러나 멀어지면, 솔직히 자신 없다.


그렇게 누군가와 멀어지면, 새롭게 내 옆에 있게 되는 사람들. 이 사람들과 다시 관계 맺기를 시작한다.




난 마당발도 아니지만, 지금 내 주변 관계만 유지하기에도 벅차다. 내 친화량, 관계 지구력이 부족해 숨이 차다. 그래서 누군가와 급격히 친해지면 조금은 겁이 난다.


수많은 관계를 잘 유지시키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신기하다. 그들은 사람을 잘 기억하고 떠올리고, 만나는 사람의 사소한 것까지 잘 기억한다. 반면 나는, 몇 년 전 내 가족의 일조차 기억하기 힘들다.


간소한 생활을 실천하는 미니멀 라이프 실천 수칙 중에서 '원인 원아웃'이라는 게 있다. 하나를 들이면(one in) 하나를 버려라(one out)는 의미이다. 아무래도 내게 관계는 원인 원아웃 또는 원인 투아웃 정도 되는 것 같다. 내가 타인과의 엮임에 들일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남들보다 한정적이다.


매 술자리마다 한 명 이상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어느 선배의 열정과 항상 편하게 농담을 건네주는 단골집 아주머니의 부드러운 입담이 부럽지만, 아무래도 난 여기까진 것 같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중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설레기도 두렵기도 한 일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기에,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기에. 그 사람의 세계로 인해 나의 세계가 흔들릴 생각만 하면 두렵다.


최근 이 두려움이 더 커진 건,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서 일까.


그래도 가끔은 내 삶에 들이고 싶은 사람은 있다는 건, 내가 이기적인 증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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