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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Sep 26. 2020

이렇게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느 주말의 풍경

결혼식 초대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주변에 이미 할 사람은 다 했다. 그래서 청첩장을 건네는 이가 없었다. 간혹 결혼 소식이 있는 이들도 연락을 꺼렸다. 연락을 받고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결혼식을 부득이하게 49명 인원 제한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꼭 가겠다고 약속했었다. 오랜만에 받은 초대라 반가웠고, 좋은 사람의 연락이라 더 반가웠다. 하지만 그가 다시 보낸 문자엔 가까운 친지만 모시고 예식을 진행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담겨있었다. 가더라도 식장에는 발도 들일 수 없었다.


그냥 가기로 했다. 예전 동료이자 친한 동생의 결혼식. 아쉬워도 아쉬운 대로 신랑 얼굴이라도 보고 오자는 생각으로 식장으로 향했다.






시작부터 경비가 삼엄했다. 출입문에는 페이스 실드와 체온계로 무장한 직원 2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삑. 삑. 다행히 정상 체온이었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듯한 스릴을 맛보고서야 예식장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의 얼굴은 좋아 보였다. 하객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마스크가 실내를 둥둥 떠다녔다. 어두운 정장과 원피스 사이에서 흰 마스크는 더욱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함께해 준 그들을 보니, 동생이 좋은 사람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신혼여행지가 제주도인 것을 확인하고 피로연장으로 향했다. 저 멀리 아는 사람인 것도 같았지만 마스크 때문에 정확하지 않았다.


피로연장 입구에서도 '체온 검문'을 당했다. 삑. 삑. 손 소독까지 마치고서야 들어갔다.


식사는 뷔페가 아닌 한상차림이었다. 원형 테이블마다 밑반찬이 놓여있었고, 테이블에 앉으면 인원수에 맞게 갈비탕이 나왔다. 아쉬운 대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꽤 넓었다. 큰 테이블에 앉는 인원도 3명으로 제한되었다. 자리가 부족할 만도 한데, 식사 인원 자체가 적어 붐비지 않았다. 서빙을 하는 직원들만 분주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배경으로 고요하게 식사하며 이렇게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결혼식 자체가 민폐라고 말한다. 그래서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언제까지 미룰 수만은 없는 일이기에 그들끼리 조용히 했노라고 말한다. 고민이 묻어나는 말투와 표정에 그의 손을 감싸 쥔다.


그래도 다행히, 좋은 사람의 결혼식장엔 꽤 많은 하객이 있었다. 마스크가 사람의 본성과 마음까지 가릴 수는 없는 모양이다. 전쟁통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결혼하고 사랑을 한다. 아직 좋은 식당엔 손님이 붐빈다.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손님이 없다고 불평만 하던 어제 그 식당의 주인은, 힘든 현실에 치여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힘들기는 모두가 마찬가지다. 힘들어도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이 속에서도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어느 주말 오후,

이렇게라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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