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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Sep 09. 2020

누룽지와 우체국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택배를 부쳐야 했다. 이동하고 밥 먹고 택배 부치고 다시 복귀하려면 1시간은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다.


빠르게 밥을 먹었다. 서둘러 우체국에 가서 송장을 썼다. 자식 같은 내 책을 보내는 거라 소중하게, 그러나 시간이 촉박하기에 적당히 대충 썼다. 5장의 송장을 빠르게 썼다.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을 썼다. 보내는 사람은 모두 동일하게 서민재였기에 한 번에 5장에 내 이름을 썼다. 시간 단축을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받는 사람을 썼다.


그렇게 겨우 5장을 써서 창구에 갔다. 창구에 있던 직원 아저씨는 꾸깃한 봉지에 든 누룽지를 조걱조걱 씹고 있었다. 말투도 표정도 분위기도 무뚝뚝했다.


그런데 직원 아저씨의 무표정이 더 무표정해졌다. 내 책과 송장을 받고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내게 물었다.


받는 분이 서민재 맞나요?


아 이런! 모두 반대로 쓴 것이다. 내 이름이 받는 사람에 쓰여 있었다. 5개 전부 그랬다. 시간을 줄이고자 한 일이 결국 이렇게 되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란 속담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이미 늦었다.


시계를 보며 내가 물었다


다시 써야 하나요?


너무나 당연한 걸 묻는 내가 바보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대답 없이 아저씨는 송장을 응시했다. 쓸데없이 또박또박한 나의 손글씨가 민망했다.


직원 아저씨는 말없이 칼과 자를 가져와 송장을 잘랐다. 그리고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위치를 재배치했다. 그리고 검정 매직으로 '보내는 곳'을 크게 썼다. 투박하지만 힘 있는 글씨체였다.


미안한 마음에 나도 한쪽에 있던 가위와 매직을 가져와 따라 했다. 그날따라 조용하고 비 내리는 우체국에서 두 남자는 쓱쓱 자르고 싹뚝 잘랐다.


곧 우체국 여직원 들어왔다. 점심을 먹고 오는 듯했다. 여직원은 두 남자가 뭐하나 곁눈질하더니 물었다. 반대로 쓰셨어요? 누룽지 아저씨가 대답했다. 네.




결국 두 남자는 임무를 완수했다. 다행히 나는 5개의 택배를 정상적으로 부칠 수 있었다. 비록 조각난 송장과 매직 글씨가 보는 이를 어지럽게 했지만 말이다. 그의 무뚝뚝함이 괜히 고마웠다. 드릴 게 없어 우체국이 울리도록 큰 소리를 인사하고 어서 차에 올랐다.


서둘러 엑셀을 밟으며 생각했다. 직원 아저씨가 씹던 누룽지는 주전부리가 아니라 그날의 점심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딱딱함이 아닌 구수함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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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혹시,

모든 우체국이 점심시간 없이 운영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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