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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Feb 05. 2021

해몽

꿈에서 크게 화를 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생전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화였다. 소리 지르고 던지고 더 큰 소리를 내었다. 꿈속에서, 나 조차도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하지만 화는 화를 더 돋울 뿐이었다.


꿈속 다른 사람들은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듣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를 피해 사라졌다. 그냥 내 앞에서 사라져 주었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근데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속이 후련했다. 상대는 상처를 받았겠지만, 현실에선 그럴 수 없는 나지만, 불같은 내지름 뒤에 평온이 찾아왔다. 알 수 없이 속이 편안했다.


웃긴 건 '화가 난 이유'였다. 가족들이 준비한 생일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난 그렇게 화를 냈던 것이다. 또 웃긴 건 그 선물은 어떤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상담'이었다. 꿈속 나를 변호(?)하자면, 그건 내가 원하는 선물이 아니었고 나와 한마디 상의 없이 준비한 선물이었다. 선물이라기보다는 치료의 느낌이었다. 아마 꿈속의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나 보다.


깨어보니 초저녁이었다. 점심 먹고 잠깐 쉰다는 게 저녁이 되어 버렸다. 낮잠의 잔상이 남아 괜히 미안했다.






총에 맞아도 별로 아프지 않다. 달려도 달려지지 않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 이렇게 어떤 꿈은 말이 되는 이야기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뒤섞임이 아니던가. 이번 꿈도 그랬다. 하지만 꿈은 현실을 일부분 반영한다. 나는 누구에게 그토록 화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또 왜 그리 폭력적이었을까?


오늘 내가 불같이 내질렀던 화는, 의지가 부족한 나를 향한 건지도 모르겠다. 출근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어서 떠올리라는 일침인지도 모르겠으며, 긴 나태함을 끝내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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