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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Dec 20. 2021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거리를 걸을 때 종종 시선을 바닥에 둔다. 시련을 당해서가 아니다. 개미를 피하기 위함도 아니다. 더 자유롭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온갖 유혹과 자극과 타인의 시선과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사람이 많은 거대한 실내에서는 앞만 보고 걷는다. 하얀 기둥과 기둥 사이 또는 저 멀리 계산대 너머의 화장실 즈음에 시선을 고정한다.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데,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싫어서. 그들이 짜 놓은 동선과 시선을 완벽하게 거부하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까.


스스로가 유혹과 자극에 누구보다 취약하다는 것을 안다. 사소한 중독이 가져올 가볍지 않을 나비 효과를 생각한다. 스스로 의도한 자극을 받고 좋은 흥분을 통해 인간적인 것들과 일반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재생산하고 싶다.


고개를 숙인다. 바닥을 본다. 끊임없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내 발에 눈을 맞추며 계속 걷는다. 이리저리 마구 내둘리지 않으려. 더 깊이, 고개를 숙인다.




Photo by thinh nguy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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