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Dec 21. 2021

고소한 알람

요즘 학교에서는 현장 학습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소풍은 소풍이라고 말해야 제맛이다.


소풍 가는 날은 대체로 잠이 부족한 날이었다. 차분한 성격 탓에, 흥분을 못 이겨 저녁에 잠을 설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침까지 푹 자지도 못했다. 아마도 그건 김밥 덕분이었다.


소풍날의 김밥은 미각 이전에, 적어도 내게는, 청각과 후각의 자극이었다. 잠결에 맡은 참기름 냄새는 거부하기 어려웠다. 한번 그 고소한 내음이 코에 닿으면 잠은 다 잔 거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부스럭 거리는 비닐장갑 소리와 김밥을 두 동강 세 동강 네 동강 내며 도마를 두드리는 칼의 청음()까지. 그때쯤이면 내 귀와 코는 이미 부엌에 있었다. 몸은 이불속에 있지만 나는 이미 김밥을 입에 넣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눈을 비비며 나가보면 엄마는 김밥을 싸고 있었다. 몇 시부터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잠에 깨기 전에 얼마나 많은 재료를 준비한 것인지, 김밥과 함께 먹을 국은 또 언제 끓인 것인지 어린 나는 알 수 없었다. 밤새 말라버린 입에 그저 김밥을 집어넣기 바빴다.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의 내가 그 장면에 있게 된다면 엄마의 피곤한 기색부터 살피고 싶다. 그러고 나서 김밥을 집어먹고 싶다.


소풍날 점심엔 친구들과 김밥을 바꿔 먹었다. 신기한 건 다 맛이 조금씩 달랐는데 어느 김밥이 더 맛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다 맛있었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은 신기해서 맛있었고 기본에 충실한 것은 역시 맛이 있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김밥들도 누군가의 새벽잠과 맞바꾼 것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어느 날에는 엄마가 김밥을 사다가 주었다. 직접 싸지 않고, 직접 사다가 주었다. 산 김밥. 하얀 스티로폼에 누워있는 그 김밥이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먹었다. 가리는 것 없는 나였다. 다만 그만큼 어린 날이었다. 잠을 위한 시간과 가장 개인적인 새벽을 다른 이를 위해 바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김밥은 새벽 알람이었다. 고소한 바스락 거림이었다. 김밥이 그립지만, 그때 그 주방의 주인은 이 글을 보더라도 김밥을 싸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때의 감사를 떠올리는 일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까. 그리고 감사합니다.




Photo by Bundo Kim

매거진의 이전글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