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에서는 현장 학습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소풍은 소풍이라고 말해야 제맛이다.
소풍 가는 날은 대체로 잠이 부족한 날이었다. 차분한 성격 탓에, 흥분을 못 이겨 저녁에 잠을 설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침까지 푹 자지도 못했다. 아마도 그건 김밥 덕분이었다.
소풍날의 김밥은 미각 이전에, 적어도 내게는, 청각과 후각의 자극이었다. 잠결에 맡은 참기름 냄새는 거부하기 어려웠다. 한번 그 고소한 내음이 코에 닿으면 잠은 다 잔 거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부스럭 거리는 비닐장갑 소리와 김밥을 두 동강 세 동강 네 동강 내며 도마를 두드리는 칼의 청음(淸音)까지. 그때쯤이면 내 귀와 코는 이미 부엌에 있었다. 몸은 이불속에 있지만 나는 이미 김밥을 입에 넣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눈을 비비며 나가보면 엄마는 김밥을 싸고 있었다. 몇 시부터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잠에 깨기 전에 얼마나 많은 재료를 준비한 것인지, 김밥과 함께 먹을 국은 또 언제 끓인 것인지 어린 나는 알 수 없었다. 밤새 말라버린 입에 그저 김밥을 집어넣기 바빴다.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의 내가 그 장면에 있게 된다면 엄마의 피곤한 기색부터 살피고 싶다. 그러고 나서 김밥을 집어먹고 싶다.
소풍날 점심엔 친구들과 김밥을 바꿔 먹었다. 신기한 건 다 맛이 조금씩 달랐는데 어느 김밥이 더 맛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다 맛있었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은 신기해서 맛있었고 기본에 충실한 것은 역시 맛이 있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김밥들도 누군가의 새벽잠과 맞바꾼 것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어느 날에는 엄마가 김밥을 사다가 주었다. 직접 싸지 않고, 직접 사다가 주었다. 산 김밥. 하얀 스티로폼에 누워있는 그 김밥이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먹었다. 가리는 것 없는 나였다. 다만 그만큼 어린 날이었다. 잠을 위한 시간과 가장 개인적인 새벽을 다른 이를 위해 바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김밥은 새벽 알람이었다. 고소한 바스락 거림이었다. 김밥이 그립지만, 그때 그 주방의 주인은 이 글을 보더라도 김밥을 싸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때의 감사를 떠올리는 일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까. 그리고 감사합니다.
Photo by Bundo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