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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Dec 28. 2021

17년 차 무명 배우

지난밤 꿈에서 나는 연기를 했다. 대사 하나 없는 배역이었지만 엄청나게 긴장했다. 깨어보니 어두운 방이었다. 새벽과 아침 사이였다. 연기자를 꿈꾸는 것도 아닌 내가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꿈의 여운을 이기지 못하고 책상에 앉았다. 저장해둔 영상을 재생했다. 한 무명 배우의 오디션 현장을 담은 짧은 영상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VAGgr4zzQ0


17년 차 무명 배우. 이름만 들어도 아는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작은 카메라와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기를 하고 칭찬과 격려를 들었다. 오디션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다.


왕도야
진짜 힘들지?

포기하지 마라. 
그래도 너 버틸 수 있지?


사십 가까운 나이에도 계속 도전하고 있던 그의 눈물. 간절함. 소망을 넘어선 열망. 그러나 늘어난 식구에 대한 사랑으로 그는 그간 이어온 도전의 끝을 예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응원하고, 가끔 그의 오디션 영상이 생각나는 건 간절함이라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그의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나도 무명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날리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가 이름 없는 배우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처음 그를 본 이후 지금까지 지니고 있다.


아직도 의문인 건 내가 이른 아침부터 김왕도 배우를 찾게 된 연유, 그러니까 왜 내가 그런 꿈을 꾸었냐는 것이다. 나의 어떤 간절함이 그의 간절함을 떠올리게 만들었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간절함이 내 기억에서 소환된 이유.


나의 무명이 그의 무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조금 슬프다.



Photo by Bund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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