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덕후는 어떻게 디지털 놀이터를 만들었을까
인터넷 신조어 중 ‘덕후’라는 말이 있다. 취미로서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 김연아 덕후가 있다. 대학 시절, 학업을 포기하고 김연아 선수의 팬 카페 활동을 한 사람. 김연아 선수 관련 자료를 모두 뒤져 피겨 스케이팅 대회별, 나라별, 방송사별 모든 경기 영상을 모은 사람. 더 나아가 김연아 팬 무비를 만들기 위해 독학으로 영상 편집을 공부한, 이 덕후가 바로 이번 장의 주인공인 도티(본명 나희선)이다.
도티는 한국 유튜브 게임 채널 최초로 구독자 200만 명을 달성한 인물이다. 2013년에 첫 방송을 시작했고, 약 2년 후에는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회사 ‘샌드박스 네트워크’를 공동 창업했다. 도티 외에도 잠뜰, 장삐쭈 등 유명 크리에이터가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
도티TV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마인크래프트 게임 콘텐츠로 초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채널 성장 과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도티TV의 성장에서 그동안 엄청난 ‘대박’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며 작은 ‘소박’들을 매일 누적하면서 성장했던 것 같다고.
그는 수년의 시간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했을까? 도티의 어린 시절부터 성공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공 과정을 따라가보자.
어린 시절의 도티는 관심사도 다양하고, 책도 많이 읽는 모범생이었다. 방송 작가와 시인의 꿈을 가지기도 했다.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사법고시를 준비했으나, 이 역시 잘 풀리지 않았다. 갑자기 가수가 되고 싶어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다양한 관심사와 호기심은 그를 방황하게 만들었다.
고민 끝에 군대에 갔다. 대부분 군인들처럼 하루 일과를 마치고 생활관에서 TV를 보는 것은 그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문득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이 마음 깊이 들어왔다. 이 말은 감수성 예민한 도티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궁금증을 품었다. 도대체 문화를 만드는 일이란 게 뭘까? 어떻게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을까? 이런 의문과 함께 TV 속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문구는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티는 전역과 동시에 무작정 신문방송학과 전공수업을 들었다.
방황의 연속이었지만 당시 들었던 수업은 도티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유튜브와 콘텐츠 산업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마침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으로 국내에서도 크리에이터들이 부각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처음부터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기로 마음먹진 않았다. 방송국 PD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자기소개서에 넣을 한 줄을 위해 1인 미디어 방송을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의 길을 발견했다. 이력서 넣기 위해 시작한 도티의 도전은 이제, 미디어의 한 축이 되어가고 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앞에서와 같이 방황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만큼 단단해졌다. 크리에이터를 준비하던 시기, 근황을 묻는 지인들에게 그는 당당히 이야기했다.
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준비하고 있어. 이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고,
정말 잘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유튜브와 크리에이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기였다. 거기다가 모범생의 삶을 살았고 명문대에 진학한 그였기에 더욱 밝히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이 일에 대한 믿음이 확실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0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설문조사에서 도티는 이순신 장군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도티TV에는 10대 구독자가 많다. 그는 자신의 모든 콘텐츠가 10대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하루 중 부모님 목소리보다 도티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는 것 같다는 초등학생의 댓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는 도티.
“내가 만든 20분짜리 영상을 100명만 봐도
누군가의 2000분을 책임지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어.”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하면서 이 일에 대한 사명감까지 느꼈다고 한다. 도티는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은 가치있는 일’이라는 철학을 세우고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인터넷 방송은 애들 장난이라는, 유튜버는 트래픽 장사꾼이라는 인식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확고한 철학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철학이나 가치관을 세우는 일이 왜 중요할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고민을 거쳐 흔들리지 않는 철학이 생기면, 이어서 목표가 생긴다. 목표는 우리를 잡아준다. 여러 방해 요소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철학과 목표가 없다면, 시작은 시도로 끝날 수 있다.
학업이 될 수도, 사업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철학이 필요하다. 그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라. 도티처럼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철학을 세워라.
그는 항상 몰입하는 게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가수 이효리, 대학 시절에는 김연아 선수, 군대에 있을 때는 군대 덕후였다. 몰입의 대상과 계기가 생기면 끊임없이 거기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다. 한번 몰입하면 완벽한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김연아 덕후 시절을 거치며 피겨 스케이팅 관련 지식은 전문가 수준이 되었다. 이러한 기질은 어떻게 그를 성장시켰을까?
사실 도티는 후발주자였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콘텐츠로 정했으나 이미 1세대 크리에이터들의 시장의 인지도가 높았다. 유사한 콘텐츠로는 경쟁이 되지 않았다. 선점된 시장에서는 열정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한다. 2세대 게임 크리에이터인 도티에게도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그가 택한 전략은 차별화와 성실함이었다.
-차별화를 통해 유튜브 친화형 콘텐츠를 만들다
도티가 처음 방송을 시작한 플랫폼은 ‘아프리카TV’였다. 그는 유튜브로 전향을 결심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 ‘유튜브 친화형 게임 영상’을 통해 차별화를 한 것이다. 기존의 유튜브 게임 영상은 1~2시간의 실시간 영상을 몇 개로 나누어 업로드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도티는 20분 영상 안에 기승전결을 담아 단편으로 제작했다. 게임을 플레이 하며 벌어지는 시트콤 같은 영상이었다. 당시에는 신선한 접근이었고, 많은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전략을 자신의 주요 성공 포인트 중 하나로 꼽는다.
-성실함도 전략이다
2013년에는 매일 영상을 업로드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도티는 하루도 쉬지 않고 영상을 업로드 했다. 지금은 편집자를 따로 두고 있지만, 처음에는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혼자 모든 일을 다 했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1000개의 영상을 혼자 제작했다. 하루 평균 2개가 넘는 영상을 올렸다. 매일 3~4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주말도 없었다.
꾸준한 성실함을 통해 그는 채널을 성장시켰다. 매일 영상을 올리는 그의 성실함은 또 다른 그의 전략이었다.
타고 난 덕후 기질과 성실함은 그를 1년 만에 대표적인 크리에이터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만의 전략이 있었고, 전략은 유효했다. 무엇보다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여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유튜브에 진정으로 몰입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유튜브의 트렌드 분석가, 케빈 알로카는 자신의 저서 <유튜브 컬처>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유튜브는 계속 진화하고 있으며, 우리가 보는 것과 공유하는 것은 물론
포스팅하는 것들을 토대로 다양화되고 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 콘텐츠 트렌드는 빠르게 변한다. 사람들의 관심사와 유행은 끊임없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트렌드가 콘텐츠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콘텐츠가 트렌드를 바꾸기도 한다. 사람들의 관심사뿐 아니라 영상에도 유행이 있다. 영상의 기본 문법을 이해한 후에는 영상 편집의 트렌드를 수시로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도티 역시 유튜브 트렌드를 파악하는데 소홀하지 않는다. 그의 항상 유튜브를 켜 놓고 모니터링을 한다. 모니터링을 통해 실시간 트렌드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무엇에 호응하는지 파악한다. 새로운 컨텐츠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영상을 올리기에도 모자랄 시간에 그는 왜 항상 국내 및 해외의 동향을 살피는 것일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감해주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는 영상이 큰 호응을 받는다. 따라서 사람들의 관심사를 살피는 것은 크리에이터에게 필수이다.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영상이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 이상,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그는 다른 채널의 구독도 많이 하고 계속 영상을 시청한다.
크리에이터는 사람들이 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빠르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유행과 트렌드를 파악하여 영상에 녹여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계속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트렌드를 보는 눈이 생긴다고 도티는 조언한다.
크리에이터 도티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세웠다. 그리고 의식적인 관찰, 몰입을 통하여 전문가가 되었다. 유튜브에서 성공했고, 10대들의 콘텐츠를 만들었다. 이제 그는 10대들을 위한 새로운 디지털 놀이문화의 창시자이다. 그는 정말로 문화를 만들었다. 7년 전, 바로 그 슬로건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