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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재 Jan 11. 2022

마눌과 마늘

전화기가 울렸다. 묵직한 진동이 택시를 흔들었다. 기사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운행 중이었고 뒷좌석에는 손님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끊어진 듯하더니 전화가 다시 울렸다. 그것이, 그리고 차 안이 계속 울리는 통에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기 화면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점잖은 기사님께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마늘'이었다. 워낙 순간이었기에 '마눌'을 잘못 봤을 수도 있겠다. 


  "손님 계셔."


통화는 짧았다. 금세 끝났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어떤 정을 느꼈다. 애정이라고 해야 할까, 속정이라고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그런 걸 느꼈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의도치 않게 보고 들은 그 상황에서, 그냥 그랬다.


택시는 신호 앞에서 정차했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내 앞을 빠르게 스쳐간 두 글자를 생각했다. 마누라의 '마눌'이었을지 당신만을 사랑해의 '마늘'이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정가로이 가꾸어진 택시 안을 둘러본 후 내 마음대로 후자로 결론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기사님의 마늘께서는 왜 전화를 했을까에 대해. 오늘 저녁, 그들의 식탁에서는 어떤 이야기와 음식이 오가게 될까에 대해.


차창 밖으로 해는 이미 졌지만 남은 오늘이 기대되긴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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