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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Jul 28. 2021

재난 상황, 혼란을 잠재우는 첨단 기술의 힘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없는 곳,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다

마을에 홍수가 났다. 귀중품을 챙길 겨를이 없다. 급히 집 밖으로 나와 대피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다른 사람들을 쫓는다. 가족, 지인들을 찾고 싶지만 난리 통에 쉽지 않다.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다. 돈은커녕 당장 끼니 할 음식도 없다. 가지고 있던 것들도 훼손되거나 경황없는 길에 어느새 잃어버렸다. 당장 내 몸을 뉘일 공간도 없고, 갈아입을 옷도 없다. 정부나 구호 단체에서 지원을 나와 임시 대피소를 마련해주었다. 음식, 마른 옷 등의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끝없이 늘어진 줄에 합류한다. 오갈 곳 없는 피해 주민들에게 또 다른 시련이다.

@Ahmed Akacha

여기까지는 홍수나 산불, 각종 자연재해나 전쟁 등의 상황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시나리오다.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적십사를 포함한 비영리단체나 지역 정부에서 즉각 대응을 한다. 후원금부터 시작해 음식이나 의류, 의약품 등의 보급물품,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인력까지 동원된다. 물론 어떤 규모와 형태의 지원이든 도움이 되지만, 혼란한 와중에 피해 주민들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는 것은 특히 어렵다. 사회복지사, 공무원 등이 일일이 전수 조사를 하며 현황을 파악하고 요구 사항을 듣다 보니 오래 걸리기도 하고 인력 소모도 크다. 또 지원금이나 물품을 신청한 후에도 각 단체에서 필요한 곳에 분배하고 실제 조달하는 데까지 시간 차가 있다 보니 여기서도 문제가 생긴다. 꼭 필요한 자원은 받지 못한 채 이미 받은 구호 물품만 이중으로 받기도 하고, 지원받기까지 기다리다 지쳐 다른 방법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한 후에야 구호물자가 온다. 전쟁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는 피난민들이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후라 더는 전달할 방법이 없기도 하다.


@Rondae Productions

적십자사에서 시작한 121 프로젝트는 이런 맥락에서 출발했다. 사회복지사나 비영리 단체 직원이 안내해 주민들에게 애플리케이션에 본인을 등록하도록 한다. 그리고 긴급한 요청을 직접 보내기도 하고, 단체에서 전하는 정보를 직접 듣는다. 애플리케이션은 저사양의 휴대폰에서도 적은 양의 데이터로 충분히 사용 가능하도록 하고,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주민들을 그룹으로 묶어 최소한 하나의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휴대폰 개통과 애플리케이션에 본인을 등록하려면, 나라는 개인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같은 서류가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 소속인지, 내 소유의 것이 무엇인지 증명할 방도가 없다. 신분증 없이는 어떤 서류나 신분증 자체를 재발급받는 것도, 내 소유의 계좌에 접근하는 것도 차질이 생긴다. 나는 나인데.. 내가 나임을 증명해줄 수 있는 건 나와 주변 사람들뿐이다. 또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해야 하는 적십자 팀의 입장으로서는 한 사람이 두세 개씩 아이디를 만든다거나, 타인의 개인 정보를 도용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필요하다.


@Rondae Productions

그런 배경으로 블록체인으로 보안성을 갖춘 가상의 아이디를 발급하는 아이디어가 고안되었다. 서비스를 신청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플랫폼 고유의 방식으로 생성된 아이디를 받는다.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증명해줄 수 있는 수단이자 함부로 도용하거나 남용할 수 없는 가상 '신분증'이다. 이 아이디를 다른 곳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이 플랫폼을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용자들(다른 피해 주민, 난민 등)과 정보를 나누고 교류를 활발히 한다. 커뮤니티 내에서 필요한 인력을 구해 활용함으로써 지원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다. 그리고 추후에 내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 다른 정부나 단체에서도 이 아이디가 사용 가능토록 하면 그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


@Pixabay


문제와 솔루션 모두 뚜렷하지만 그래도 제약 사항은 많다. 최우선으로 전기, 인터넷 등의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이나 연령대에 따라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거나 문맹인 주민들이 있다. 이런 경우에도 모두가 정보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도 또 다른 과제다. 아직 개발 중인 서비스이고 나는 초기 단계에만 참여를 했었기에 모든 과정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와 노력이 있기에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으며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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