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딧 Oct 30. 2021

평화주의자  주제에 싸우기, 그리고 얻은 작은 승리

나와 내 바운더리를 지키는 대립

살면서 싸워본 적이 별로 없다. 학창 시절에도 싸움이랄만 한 사건은 없었다. 난 갈등 상황에 부닥치면 내 뜻을 굽히더라도 우선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그렇다 보니 누구와 싸워본 적은 손에 꼽고, 드러내놓고 대립한 적도 드물다. 물론 내 형제자매 부모님 남자친구는 재외하고다.


사건의 발단

내가 속한 팀에 디자인 인력이 아직 부족하다 보니 외주 디자이너 E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미국에 위치한 에이전시로 40대 중년의 나와는 매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다. 개발자 출신이고 디자인을 학교에서 공부한 적 없는, 경험으로 배웠다는 사람이다. 이 분과 일주일에 2-3번 온라인 미팅을 한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월등히 많은 사람이고 무엇보다 말발이 세다. 원어민이 유창하게 청산유수로 하는 말을 듣고 있자면 일단 맞는 말 같아 고개를 끄덕인다. 나보다 프로젝트에 먼저 합류해 일하고 있었기에 이 분은 처음부터 내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고맙게 들었다. 하지만 나도 팀과 회사에 적응을 해가다 보니 내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조언을 줄 때가 점점 늘어났다. 묻지도 않은 말에 혼자 대답하며 말이 길어질 때면 중간에 말허리를 자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우리 프로젝트에 대한 의욕을 높게 샀기에 나는 늘 경청해 주고 또 거기에 대한 내 피드백을 얘기해 주었다. 아마 내 피드백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 내 의견을 알고 싶어서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을 테니.


원치 않는 조언을 자꾸만 주는 E가 바로 꼰대?

지금 돌이켜보면 이 분은 내가 자신이 하는 말을 감사히 떠받들어 주길 바란 것 같다. 하지만 길고 장황한 언변은 점점 역효과를 냈다. 반응이 없으면 자꾸 주제를 이리저리 바꾸어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맥락 없을 때가 많았다. 점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치 않는 조언을 자신의 2센트(미국 식 표현이다) 라며 매번 미팅 시간을 초과하며 내놓았다. 난 갈등을 원하지 않았기에 늘 웃는 얼굴로 대해주었고, 아저씨의 2센트들은 내 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난 후, 이 사람과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날따라 이 사람과 나는 1:1로 미팅을 하게 되었다. 그분이 선 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한 얘기에서 벗어나 우리 팀이 일하는 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내 입장과 우리 팀의 접근 방식을 재차 설명했으나 아저씨는 계속 브레이크 없는 선 넘는 말들을 던졌다. 그러다 그날따라 답답했는지 한 시간 넘게 불평을 하며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도 악담을 쏟아부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고, 더 이상 참기가 힘들어 딱 잘라 말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유감스럽지만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에 대해 악담을 하는 건 듣고 싶지 않다. 난 우리 팀의 방식에 믿음이 있다. 만약 이전 프로세스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다면 거기서 배울 점을 찾고, 앞으로 더 잘하는 데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은 “그래,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누구나 자기 의견을 가질 순 있는 거니까 그럴 수 있지.” 투로 비꼬듯 말했다. 더 이상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우리 팀 방식이 이해 안 가는 건 유감이지만 당신이 노력하는 것이 맞다. 그러지 못하겠다면 당신의 매니저와 얘기해서 공식적으로 문제을 제기”하라고 내 딴에는 가장 강한 수를 두었다. 그리고 미팅 시간에는 지금 우리의 업무 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언성을 놓이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도 나도 툭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옆자리 동료가 무슨 일이냐고 괜찮냐고 물었다. 대답을 하려는데 화가 목까지 차올라 말이 나오지 않아 잠시 바깥공기를 쐬러 갔다. 


E와의 싸움은 이미 엎질러진 물, 그런데 내가 대처를 잘 하긴 한 걸까?

챗지피티와 대화를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번엔 일부터 저지르고 챗지피티를 찾았다. 


직장에서 싸움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합니다. 다음은 직장에서 싸움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감정을 조절하고 차분하게 대응하기: 싸움이 시작되면 감정을 조절하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화를 내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대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비판적인 언어와 행동 피하기: 싸움을 피하려면 비판적인 언어와 행동을 피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공격하지 말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세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건설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문제 중심으로 대화하기: 싸움이 시작되면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개인적인 공격은 피하고, 대화를 문제의 해결과 개선에 집중시키세요. 상호 간의 이해와 협력을 위해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세요.
적절한 시기에 대화 요청하기: 싸움이 지속되거나 해결이 어려울 때는 적절한 시기에 상사나 중재자에게 대화를 요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재자의 도움을 받으면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팀워크 강화하기: 직장에서 싸움을 피하려면 팀워크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호 간의 신뢰와 존중을 증진시키고, 업무 목표에 집중하여 협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세요. 팀원들과의 원활한 소통과 협업은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작은 승리

그다음 주, 또 다른 미팅이 있었다. 아직 매니저를 통해서든 본인에게서든 아무 말이 없었다. 미팅 접속 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난 잘못한 것도 없고 실언한 것도 없는데 왜 긴장을 했을까. 나도 그분도 평소처럼 안부 인사를 주고받고 일 얘기를 했다. 내 느낌 탓인지 그분은 내게 조금 더 예의를 차리는 것 같았다. 선 넘는 얘기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지난주에 있던 일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알을 깨고 나와 얻은 깨달음

나의 소감은… 알을 깨고 나온 느낌이다. 내가 갈등을 피하고 싶던 이유는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내가 일을 망치는 원인이 될까 봐.. 나만 참으면 되는 일을 내가 들쑤셔 놓을까 봐..


하지만 꿈틀 해본 결과,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변한 게 있다면 그 사람과 조금 껄끄러워졌다. 그건 그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도 내 쪽에선 그 사람이 늘 불편했으니 조금 더 불편해진 것뿐이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날 붙잡고 2센트 조언들을 늘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 팀에 대한 악담도 그만두었다. 


그동안 나는 갈등 상황과 그 갈등 후에 벌어질 일들이 두려워 내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대면하고 나자 일단 내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만약 이 아저씨가 그만두기 전에 표현하지 못하고 계속 참았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 사람의 본심을 안 이상 더 참을 이유도, 내 편에서 일방적인 배려를 해줄 이유도 없었다.


오늘도 그 분과 미팅을 했다. 주말 잘 보냈어? 날씨는 어때? 아무렇지 않은 척 건조하게 얘기를 하는 데, 문득 한 단계 더 성장한 느낌이다.


+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의 흐름과 마무리 부분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곧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출간 안내

아프리카에서 진행했던 디자인 프로젝트를 포함해 "지속가능성"과 "디자인의 가능성"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 <아프리카로 간 디자이너>를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YES24 링크

이전 05화 무례할 정도로 직설적인 대화 문화에 적응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