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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 Nov 17. 2019

특권과 가난 사이 어딘가에 서있는 나

.케냐에서 든 생각

케냐에 왔다. 3일간 휴가를 보내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 방문은 네 번째지만,

휴양지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주일 출장이 끝나고 머리도 식힐 겸, 한국 가기 전 일처리도 미리 해둘 겸 오게 되었다.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콘도에 하루에 한 십만 원 정도 하는 방을 동료들과 셋이 빌려서 지냈다.

영화에 나오는 휴양지 같은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몰아치는 파도를 보며 아침식사를 한다. 토스트와 신선한 주스, 그리고 커피. 동료들과 간밤에 어떻게 잤는지 선풍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진 않았는지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해변을 따라 산책을 간다. 해가 쨍하게 뜨기 전 선선하고 맑은, 산책하기에 딱인 날씨다. 그리고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반갑고 정답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방에 돌아가면 방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다. 침대보가 깔끔하게 주름 없이 정돈되어 있어 침대에 걸터앉기 미안할 정도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지극히 중산층에 가깝고,

혼자 살다 보니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가끔 외식하고 가끔 옷 한두 벌 사 입고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유럽에서 여행을 다닐 때는 호텔보다는 에어비앤비 위주로 다니고, 가도 중간 가격대로 가게 된다.

이 곳에 오니 나는 마냥 특권층이다. 한국으로 치면 고급 호텔에서 지내고, 매끼 호텔 레스토랑에서 사 먹고. 불편하다 뭔가 불편한 기분이다.


해 질 녘 혼자 해변가를 걷고 돌아오는 길에 호텔 앞 언저리에서 젊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나는 호텔 직원인 줄 알고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어디서 왔는지, 내가 온 곳에서 비행기는 몇 시간이 걸리는지 짧고 의미 없는 대화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호텔 직원이 아니었다. 로컬 아티스트라며 자신이 만든 코코넛을 깎아 만든 열쇠고리 등을 꺼내서 보여주는데. 나는 일단 현금이 전혀 없기도 했고. 만약 내가 주문을 하면 내일 아침에 가지고 온다고 열정적으로 말하는 사람. 내가 이천 원 정도 내고 내 이름을 새긴 열쇠고리를 주문한다면, 그는 아마 오늘 밤을 꼬박 새워서 만들어 올 작정인 것 같았다.  최소 8시간 정도의 그의 시간을 내가 단돈 2000원에 살 수 있다.


황급히 호텔로 들어오는데 다행인지 그 사람은 호텔 입구에서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도 호텔 입구를 서성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매일 이곳까지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와 사람들에게 접근해 열쇠고리를 사라고 홍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을 보내며 비슷한 사람들을 더 많이 보았다. 


나는 가난에 대해 왜 이렇게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의 분야를 선택한 이유에도 그 거부감이 자리해있다. 그 뻔뻔함과 부끄러움이 허락되지 않는 가난. 내가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그게 너무나 싫다. 특권도 불편하고 가난도 불편하고. 나는 불편한 것 투성이다.


마지막 날, 공항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이 사람들이 오가던 마을을 보게 됐다. 딴 세상 같았다. 허름한 집들과 익숙한 풍경. 지붕 없는 헛간 같은 식당들에 줄 서있는 사람들. 

내가 한 주간 지내던 휴양지가 들어오기 전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람들은 무슨 일을 했을까? 나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이곳에 와 호위 호식하며, 함부로 케냐 사람들의 시간과 노동력을 훔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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