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딧 Jan 06. 2020

두 평짜리 방에서 느낀 사치

나이지리아에서 느낀 이기적인 행복

나이지리아다.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의 첫 단계로 3주간 방문 중이다. 35-36도가 넘는 온도에 에어컨이 없는 차를 타고 기본 4-50분 이동을 한다. 지도에서 보면 15분 정도의 거리인데. 온종일 교통 체증이 아주 심각하다. 에어컨이 있는 곳도 간혹 있지만 거의 없거나 정전으로 어차피 소용이 없다. 하루에 평균 서너 번은 도시 전체에 정전이 오는 것 같다. 땀을 닦으려는 시도도 무의미하다. 도시 전체에 붉은 흙먼지가 휘날려 옷과 피부에 달라붙는다. 그저 끈적끈적한 채로 다니며 숙소에 가길 기다릴 뿐.

이바단에서 제일 오래된 시장 옆 길거리


이번 방문의 목적은 여러 장소에 방문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는 것이기에 도시 외곽 내곽, 의사, 교수와 같은 중상류층부터 질병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환자들까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난 가난의 모습 앞에 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보며 이런 동정심을 느끼는 것 자체가 내 우월감을 담은 마음인 듯하고, 어떤 식으로든 무의식 중에 평가를 내리는 나 스스로가 불편하다. 


그러면서 사적인 공간이 내게 주는 이 안락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시 외곽이나 빈민촌에 가면 집 구조 자체가 열려 있고 방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다. 보통의 건물들이 다 그렇듯 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열기가 너무 뜨겁기 때문에 햇빛이 들지 않게 건물을 짓거나 커튼을 두껍게 친다. 그래서 전기가 끊기면 (거의 하루 종일이다) 내부는 저녁이나 다름이 없다. 어두운 방 한편에 놓인 살림살이들... 가족이나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전부 한 공간을 공유하며, 누군가의 개성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생계 걱정이 빠듯하다면 먹고살기에 바빠 그런 공간을 꾸미고 누리기에 어려울 것이다. 정말 의식주 해결이 우선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빈민가


내가 이 곳에 산다고 상상을 해보려니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가 너무 귀하게 먹고 자라서는 전혀 아니고... (전에 비슷한 숙소에서 동료들 세명과 신세를 진 적도 있었다. 단기로 있었기에 그랬는지, 생활 자체는 할 만했다.) 내 사생활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거부감이 들었다. 몸보다 내 마음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내 취향대로 가꾸고 내 마음 가는 대로 혼자 이런저런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내 공간이 없으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3주간 지낸 대학교 게스트 하우스에서 내가 묶은 방 문 앞에서


해가 질 때쯤 숙소에 돌아와 찬 물로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켜고 앉아 있다.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내가 지냈던 숙소는 따로 발전기를 갖추고 있어 정전이 나도 자체적으로 전기를 수급한다. 오늘 하루 바깥에서 보낸 무덥고 지쳤던 시간들이 그래도 이렇게 끝난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낯선 이 곳에서, 그래도 내가 이만큼의 편안함과 쾌적함을 느끼는 숙소가 있다. 그리고 낮에 갔던 곳들과 만났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하루 종일 바삐 오가는 차와 오토바이,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경적 소리로 꽉 찬 길거리, 시장통을 바삐 오가는 사람들이 살을 부대끼며 사는 곳. 닫혀 있는 방문을 보며 마음이 점차 가라앉는다. 

두 평 남짓 되는 이 작은 공간이 주는 사치스러운 행복을 만끽한다. 이런 사치를 누리는 내가 이기적이라고도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는 걸.



매거진의 이전글 특권과 가난 사이 어딘가에 서있는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