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표적이 내가 될까 봐 억울하다
네덜란드에는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웃 나라인 독일과 유럽 나라 몇 곳에서 환자가 발생했지만 네덜란드 뉴스는 차분한 편이다.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기도 중국인 관광객이나 네덜란드에 사는 중국인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춘절을 보내고 돌아온 중국인 동료들은 두 주간 자가 격리하도록 조치했다. 사태가 점점 커지고 있다보니 본인이 나서서 자신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친구도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곳에 사는 대다수의, 동아시아 한중일 출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비슷한 위협과 불안의 존재가 되고 있다. 페이스북 커뮤니티에 지하철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위협하는 말을 들었다고 글을 올린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인종차별은 사실 아주 생소하진 않다. 여기 살면서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고, 어린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허공에 주먹질을 한 적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 펍에 갔을 때는 지나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아시아 음식 이름을 외치며 킬킬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보다 만만해 보이는 대상을 인종, 성별, 나이 등 다양한 이유로 차별하는 사람은 어디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왔다는 말이 북한인지 남한인지를 되묻거나, 한국이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차별이 아니라 무지일 뿐인 경우도 있다. 굳이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가며까지 사실을 바로 잡을 필요를 못 느낄 정도다.
하지만 놀림의 존재에서 벗어나 불안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새로운 문제임을 깨닫는다. 요 며칠 새에 밖에 나갈 때면 혹여나 의심을 살까 조심하고, 내 행동을 의식한다. 무의식 중에 내가 재채기라도 할까 무섭다. 카페에서 공연히 옆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슈퍼마켓에서 계산할 때 영어를 쓰는 나를 점원이 오해하는 것만 같고, 운동을 하러 갔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 어떤 타격을 입을 만한 일을 당한 것은 아니다. 아무런 의미 없이 나를 보았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차별의 대상일 수 있다는 이 사실이 내 생활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내가 잠재적 가해자라는 오해를 받을까 무서워 피해의식을 느끼며 내 행동을 검열한다. 마음 같아선 중국인이 아니라고 써붙이고 다니고 싶은 심정까지 든다. 그런데 이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가. 내가 차별당하는 것은 억울하다면서, 중국인 전체에게 선을 긋는다. 한꺼번에 그들 모두 잠재적 가해자로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
그 동시에 내가 그동안 누려온 평온함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우리나라는 당연하고, 남의 나라에서도 (일부 놀림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차별 없이 살아왔다. 내 정체성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적도 없었고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이렇게 의식해본 일도 없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부터도 중국인들을 보면 불안하니까. 특히 배낭을 메거나 캐리어를 끌고 가는 관광객으로 추정되는 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다. 저 사람들은 바이러스 검사는 받은 걸까. 혹시 잠복기는 아닐까. 해열제를 먹고 돌아다니진 않을까. 불신과 불안으로 내가 던지는 차별의 눈길. 그리고 그 차별의 표적이 내가 될까 봐 억울한 마음. 이중적인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며 이렇게 지내고 있다.